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복, 진정한 축복은 예수님 안에 있어
복음의 메세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전해져야
다음 세대, 연령 상관없이 모든 세대에 선교적으로 적용해야
미국 워싱턴주 훼더럴웨이에 위치한 새로운교회(담임 서다니엘 목사)가 올해 1월 교회 이름을 새교회에서 "새로운교회"로 변경하고 선교하는 교회로의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서다니엘 목사(49)를 만나 그의 삶과 새로운교회가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서다니엘 목사는 교회의 분명한 사명과 명확한 선교 비전으로 하나된 예배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다. 또 개혁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성경을 중심삼아 늘 새로움을 지향하고, 평신도를 동역자로 일으켜 세워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으로 인도하고 있다.
서다니엘 목사는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하던 2020년 새로운교회에 부임했다. 중학교 시절 워싱턴주 벨뷰로 유학을 왔던 그는 시애틀평강장로교회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센트럴 워싱턴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으로 귀국해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신앙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역시 기쁨과 은혜를 누렸고, 이 땅의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목회자로의 길을 선택했다. 총신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학생부 사역부터 청년부, 행정 사역까지 두루 거쳤고, 예장 합동 황동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 매년 선교지를 방문하며 선교사로의 비전도 깨닫게 된 그는 더욱 체계적인 선교 교육을 받고자 당시 선교학으로 유명했던 풀러 신학교에 진학했다.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 목회학을 공부했고,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시기에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됐고 미국에 발이 묶여, 은퇴 후 벨뷰에 거주하던 부친과 함께 지내게 됐다.
마침 전임 원호 목사의 은퇴로 새교회에서 신임 목회자를 찾고 있었는데, 교회가 속한 C&MA 교단의 한 목회자가 새교회에 가보는 것을 추천했다. 새교회 당회에서는 서다니엘 목사와 2번의 예배를 드린 후 담임 목회자로 함께 하기를 결정했다. 성도들은 서 목사와 함께 펜데믹 중에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품었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내가 만난 예수, 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
목회를 해온 시간이 적지 않고, 설교도 수없이 전해왔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들이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가장 뿌듯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공동체와 한 명 한명의 영혼들이 감사하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에 부임하셨는데요.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풀러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사역을 하기로 됐었는데, 코로나 펜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췄었습니다. 제가 세웠던 계획도 중단이 되었고요. 펜데믹이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이 아니었다면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펜데믹으로 인해 미국에 머물면서 새로운교회에 부임하게 됐고요. 담임 목회가 처음인 저에게는 더욱 말씀에 집중하며 새로운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미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미국에 처음 온 것은 중학생 시절 누님과 함께 워싱턴주 벨뷰로 유학을 왔었습니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못해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고생을 많이 했고요. 당시에는 동양인들이 학교에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때 최태원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던 시애틀평강장로교회를 출석했었어요. 한국의 정이 그리웠고 음식이 그리웠던 시절이라 벨뷰에서 시애틀까지 한 주일에도 몇 차례씩 교회에 가서 저녁 늦게서야 집에 돌아왔을 만큼 추억이 많은 교회입니다.
저와 함께 유학을 왔던 누님께서 교육학을 전공하셨는데요. 미국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좋다는 조언을 받고, 저도 센트럴 워싱턴 유니버시티에서 사회과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신학 공부는 한국에서 하셨는데요. 한국으로는 어떻게 돌아가게 되신거세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던 시기에 마침 선교사님 자녀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에서 외국에서 공부한 선생님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저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 영혼, 한 영혼이 너무나도 소중함을 발견하고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깨달아 총신대학교 신대원에 진학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우식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광명의 아름다운교회에서 전도사에서 부목사까지 사역하면서 학생부 청년부, 행정을 맡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사역은 어땠나요?
"학생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단기 선교를 갔었는데요. 일본이 복음화율이 낮은데도 물질적으로는 굉장히 부유한 나라잖아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임에도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기독교는 기복 신앙의 종교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며 물질적인 복이 전부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도 일깨워 주고 싶었고요. 보기에는 잘 사는 것 같지만 그 안에 허무함이 있잖아요.
우리가 선교를 간다고 하면 물질적으로 가난한 나라로 가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었기에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선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적인 필요도 채워주시지만, 진정한 축복은 예수님 안에 있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요.
복음이 변하지 않듯이 복음의 메세지는 어느 곳에서 전해지던지 동일해야 합니다. 미국 땅에서 전하는 메세지와 북한이나 아프리카와 같이 어려운 삶을 사는 분들에게 전해지는 메세지는 동일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 자체가 복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다른 것뿐이지 복음은 절대 변하지 않지요."
-당시 일본 단기 선교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나요?
"일본 사람들이 물티슈와 만화를 좋아해서 낮에는 만화로 그린 전도지와 물티슈를 나눠주며 전도를 하고, 밤에는 말씀과 기도 집회를 했었어요. 그런 가운데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들을 가졌고요. 아이들이 성령체험을 하고 방언 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선교에 헌신하기를 결단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또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였기에 학생들은 그때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하는 것이고, 복음은 원수도 사랑하는 실천적 삶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단기 선교를 만류하시던 분들도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협조를 해주셨고요. 3년 동안 매년 일본으로 단기선교를 갔었습니다."
-이러한 선교 경험이 목회 철학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선교'라는 것이 제 목회적 비전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선교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가 걸을 수만 있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교회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교회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교회가 부흥된 다음에 선교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선교는 교회 규모나 시기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선교지에 후원금을 보내는 것도 귀하지만 선교사님들의 사역 현장을 방문해, 선교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공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님들이 선교지를 다녀오면 선교에 대한 이해가 바뀝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열정이 생깁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해 같은 비전을 가져야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성도님들을 동역자로 부릅니다. 저희 새로운 교회는 지난해 터키에서 선교사님의 사역에 동참했고요, 올해는 교회가 후원하는 몽골 선교사님을 방문해 사역에 협력하게 됩니다."
-담임 목회 사역은 처음이신데요. 청년, 학생 사역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저는 청년들을 대할 때나 장년부를 대할 때나 목회적 마음 가짐에는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년 설교를 할 때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르신들도 복음에 도전받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청년시절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 분도 많으시고요. 어르신들이라고 이제는 그만 쉬시면서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만 품게 하시기보다는 청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대로 자신들의 달란트에 맞게 사역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도 교회에서 노인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세요.(웃음)
목회자의 설교나 사역을 성도들에게 맞추다 보면 그분들에게 좋아하는 설교를 하게 되거나 기복신앙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메세지를 바르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청년이나 아이나, 어른들이나 하나님의 메세지는 동일합니다."
-한인 이민 교회 다음 세대 신앙 교육,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새로운교회가 다음세대를 가르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란 정의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로 제한하는 것은 바르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 세대를 10-20대로 제한하면 30-40대 가운데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다음 세대가 아닌 게 되잖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먼저 부르신 세대가 있고 마찬가지로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세대를 다음 세대로 정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의 자녀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른 신앙 안에서 교회의 미래 세대로 자라나는 것이 중요한데요. 연령을 제한하기보다는 연령과 세대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에 선교적으로 접근함이 한인 이민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옳다고 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설교에서도 그렇지만 사역에서 제가 가장 중점을 주는 부분은 항상 말씀을 공부하고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하며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있고요. 설교 준비할 때는 되도록 본문에 충실하고 성경 안에서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설교를 전할 때 예화나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청중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지만 정작 설교자에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준비하면 설교자인 제가 먼저 은혜를 받습니다. 제가 먼저 은혜를 받고 가슴이 뜨거워져야 비로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설교를 들음으로 성경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직접 읽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배경과 정확한 뜻이 있음을 깨닫고 성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고요."
-평소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저는 3마일씩 달리기를 합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제자리 달리기를 오래 하면 무릎관절에 무리가 되기 때문에 쿠션이 있는 트랙에서 운동을 합니다. 평소 사역을 마치고 피로하면 쉬기보다는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를 합니다. 운동을 안 하면 더 많이 먹게 되더라고요.
3마일씩 달리면 더 피곤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저에게는 몸과 마음이 쉬면서 회복하는 시간이 됩니다. 뛰면서 사역을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건강 관리로 달리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생까지 학교 육상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 말도 통하지 않았을 시절인데요. 공을 향해 달리는 저를 유심히 보던 코치 선생님의 추천으로 육상을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동양인으로 카운티 대회에 입상했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할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항상 지금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목회하는 모든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데요. 귀한 공동체를 맡겨주시고 사역하게 하게 해 주신 데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말씀 전하는 때가 가장 뿌듯한 시간입니다. 저의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아멘으로 마음을 모아주셔서 힘이 납니다. 5년 또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가 가장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오늘이 만족스럽고 내일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