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성, 하나님께 동화돼야 온전해져”

목회·신학
신학
노형구 기자
hgroh@cdaily.co.kr
이충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일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온라인 신학 포럼서 발제
학회 모습. 맨 왼쪽 아래가 이충만 박사. ©줌 캡쳐

제106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 임원택) 온라인 신학 포럼이 1일 온라인 줌(ZOOM)을 통해 열렸다. 이날 이충만 고려신학대학원 조교수가 ‘신격화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비판과 하나님의 본성과 행위의 관계성(deific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 교수는 “브루스 L. 맥코맥 등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함을 뜻하는 신격화에 대해 비판해왔다”며 “즉 신격화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 행위의 직접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희석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격화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함을 의미할 때 그리스도의 신성에로의 참여를 주장하게 된다면, 인간 밖에서 이뤄진 칭의의 법정적 측면이 약화된다”며 “개혁주의 전통은 구원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타락한 인간의 노예가 된 의지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격화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족성과 상호협력을 말한다면, 이와 관련 인간의 죄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어거스틴의 신격화 개념을 차용해 설명했다. 그는 “어거스틴에 따르면, 피조물은 시간의 간극 안에 존재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시간적 간극과 무관하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은 현재”라며 “창조된 피조물은 창조주에 의존해서 참여의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참여가 아니라, 그분의 위대함 또한 참여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분이 위대하시고 지혜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간극과 무관하며 하나님께 창조된 영적 피조물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참여의 간극과 무관하나, 인간의 영혼을 포함한 영적인 피조물들은 하나님께 참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어거스틴에 따르면, 경륜은 하나님이 시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이라며 “경륜이란 시간 안에서의 하나님 사역이다. 결국 경륜은 구원의 역사 안에서 시간에 맞도록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그래서 성자와 성령의 파송을 가리켜 경륜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계시하신 것을 옛 경륜이라고 말하고, 성자를 보내신 것을 새로운 경륜이라고 말했다”며 “특히 어거스틴은 시간의 경륜이 인간을 영원의 신학으로 상승시킨다고 설명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을 위해 시간 안에 나타나셔서, 인간이 시간 안에서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로 상승하도록 만드셨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성령의 파송은 주님의 세례 장면에서 비둘기의 형태로(마 3:16), 혹은 오순절의 소리와 강한 바람, 그리고 불의 혀 같은 모양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행 2:2-4)은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비가시적이고 불변하시는 성령께서 사멸하는 인간의 육안에 드러나신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님은 외적 표지로 드러난 성령의 시간적 현현을 통해 성령의 감춰진 영원성으로 인간의 마음을 옮기신다”며 “하나님의 시간의 경륜은 인간을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자와 성령의 파송은 시간의 경륜이며, 이는 하나님 자신께서 시간 안에서 드러나신 행위다. 다시 말해 시간의 경륜 안에서 본질을 따라서 하나님은 숨어 계시고, 행위로는 드러나신다”며 “일례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영이 성찬을 집례하는 인간의 손을 통해 행동하시고, 인간의 몸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은 육안에 숨어 계시나 동시에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특히 인간 지성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어거스틴은 설명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질적 의미는 지성이 하나님을 수용하고, 하나님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하나님의 모방으로 창조된 지성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때문에 “어거스틴은 인간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답기 위해선 지성의 시야가 하나님께 동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하나님께 동화되는 지성의 시야 없이는 지성의 자기 이해와 자기 사랑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어거스틴은 인간이 시간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초월적 실체로 상승해야 한다면서, 이를 지식과 지혜의 관계성으로 설명했다”며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은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앎으로 나아가도록 창조됐다. 지성의 올바른 움직임은 시간과 물질세계에 묶인 사물에 대한 인식인 지식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앎인 지혜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앎인 지식에서 신적인 것에 대한 앎인 지혜로 나아가는 게 지성의 작용이라고 어거스틴은 강조했다”며 “반대로 지성이 지식을 통해 지혜로 진보하지 않고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사물에 대한 애착에 머물러 있는 것이 지성의 변형이며 하나님 형상의 훼손”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성이 결국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해선 지식에서 지혜로 진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거스틴의 주장”이라며 “이에 대해 요한복음 1:1-14은 인성과 신성의 위격적 연합을 이룬 성육신을 가르쳤는데, 해당 본문의 첫 다섯 구절은 하나님이신 영원한 말씀 ‘로고스’에 대한 묘사로서 지혜를, 이어진 14절까지의 구절은 영원한 말씀이 시간 안에 들어오는 과정의 묘사로서 지식을 말한다”고 했다.

이충만 교수는 “어거스틴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 요한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이신 영원한 말씀에 대한 지혜로 나아가야 함을 가르쳤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면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볼 때 지성은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실재에 대한 지식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혜로 진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한편, 이충만 교수 발제에 대해 이남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논찬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학회 #이충만교수 #어거스틴 #신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