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도 이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며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연구자 조지 바나(George Barna)가 조사한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종교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태도인 아파티즘(apatheism)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슈마허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종교에 대해 모르거나 무관심한 비율은 부모와 빌더 세대에서 28%, X세대에서는 31%에 이르며,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약 절반(43%)에 해당한다.
그는 “복음서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당국을 제외하고는, 예수에 대한 무관심을 별로 보지 못한다”며 “예수가 누구이며, 그분이 그들에게 말한 것을 이해한 사람들의 유일한 두 가지 반응인 미움 또는 경외감 및 사랑의 감정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수의 가르침은 그를 너무 미워하여 죽이기까지 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내면에 깊이 파고들었다”라며 “그분의 생명의 양식을 충분히 들은 준제자들 중 일부는 정치적인 올바른 방식으로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는가?’(요한복음 6:60)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분의 가족조차 예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분을 붙들어 나오려고’(마가복음 3:21) 했다”고 설명했다.
슈마허는 “오늘날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버지니아 스템-오언스(Virginia Stem-Owens) 교수가 예수의 산상수훈을 읽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그것에 대한 에세이를 쓰라고 요청하자, 일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며 예시를 들었다.
오언스에 따르면, 한 학생은 “산상수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읽기 어렵고, 내게 완벽해져야 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고, 다른 학생은 “설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황당하다. 원한을 품는 것이 살인인가? 여자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잘못인가?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극단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언”이라고 반응했다.
또 다른 학생은 산상수훈이 “극도로 엄격하며, 이게 죄인지 아닌지라는 생각 말고는, 삶을 거의 즐길 수 없게 만든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옛말에 ‘읽는 것을 다 믿지 말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반응에 대해 슈마허는 “그분을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그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라며 “미움 또는 사랑의 반응은 예수의 가르침이 마음의 중심을 정확히 맞히고 있음을 나타낸다. 내 생각에는 지금 예수에 대해 편안하게 무관심한 사람보다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이 예수가 선포하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언스도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1세기와 같이, 성경이 정직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귀에 여전히 불쾌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에 이상하게도 희망이 차올랐다. 나에게는 그 사실이 어찌 됐든 그 중요성을 입증해 준다”고 해석했다.
또 슈마허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의 말을 인용하며 “산상수훈을 듣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는 것,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 생각이 깊은 사람은 ‘정말 아름다운 가르침이고, 훌륭한 생각이군요’라고 말하며 떠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 저를 산상수훈에서 구원해 주세요!’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는 “만일 그렇다면, 여전히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이생과 내세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에 무관심한 사람보다는 당신이 천국에 더 가깝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께 분개하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요한복음 3장), 마침내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13)을 보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약 그 일이 당신의 삶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예수와 당신의 지나간 삶을 생각할 때 당신도 베드로처럼 ‘주님, 우리가 어디로 가겠나이까? 당신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권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