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존엄사 아냐…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교단/단체
기독교기관
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샬롬나비 논평
샬롬나비 김영한 상임대표(숭실대 명예교수, 전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장, 기독학술원장) ©기독일보 DB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안락사는 존엄사 아니다, 웰다잉이 요청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27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이 논평에서 “안락사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사망케 하는 의료 행위로서 의사 조력 자살에 해당한다”며 “그런가 하면 존엄사는 기계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둘을 혼돈하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며 “사람들은 안락사와 존엄사를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존엄사는 인간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안락사는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죽을 권리와 자율성의 문제 이전에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가 있다. ‘우리는 죽음 이전에 평소 경험하는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심리학적 차원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심리학과 기독교의 통합에 힘썼던 ‘인격 의학’의 선구자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가 언급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창조적인 태도는 ‘수용’”이라며 “‘수용’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고, 고통이라는 악과 투쟁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의 딜레마는 파괴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창조적인 태도로 반응할 것인가이다. 그는 고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 편에 설 때이며, 이로써 고난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고난은 물론 육신과 정신의 고통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들은 “우울증은 하나님 편에 서는 걸 방해하고, 쉬운 죽음인 안락사로 이끈다”며 “평소에 우리는 신앙 안에서 신체와 정신, 마음 단련을 하여 건강한 웰빙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웰빙이 뒷받침될 때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이 있는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그런 의미에서 다루기 힘든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떤 태도로 임하여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며 “폴 투르니에는 고통 안에는 고통의 크기만큼 고통을 이겨낼 에너지도 들어있다고 말한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Carl G. Jung) 역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일컬어지는 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성이 함께 잉태된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들은 “안락사는 일차적으로 근대사회 이후 신앙심이 없는 가치관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인식적 변화”라며 “모든 치유는 긍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생각, 치유와 성장 둘 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적인 태도를 잊어버린 것이 오늘날 현대인이 당면한 죽음의 문제”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만날 때에 그것을 도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일 수 있다. 그 도피의 방법이 고통을 완화시키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는 의학 발달로 자신의 삶 자체를 마감하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길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고 했다.

이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서 만나는 고통에서도 주인이심을 깨닫고 고통의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찾아야 하겠다”며 “고통을 피하고 싶어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생의 마지막의 고통이 아니라 언제라도 자기가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고통을 만나면 안락사를 선택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존엄한 것이기에, 인간 편에서 생을 지배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에게 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