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전쟁 후 북한과 밀착… 탈북민 단속 강화”
러시아 당국이 지난 1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한 한국인은 현지 북한 노동자 등 북한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지원해온 백광순 선교사(53)로 알려졌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최근 러시아 당국 기밀 문서를 입수해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백광순 선교사는 2003년 백석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9년부터 중국에서 탈북민 사역을 펼치다가 2020년부터 (사)지구촌나눔재단의 블라디보스토크 지부장으로 임명됐다.
이어 현지 북한 노동자 등 북한 주민들에게 쌀, 의약품, 의류 등 생필품을 지원했고, 예산 지원 등 탈북민 구출 활동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지 북한 벌목공 등 6명의 탈북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백 선교사는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브 미결 구치소에 수감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에서 백 선교사가 간첩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다면 최대 징역 20년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일각에선 러시아 측이 백 선교사에게 적용한 ‘간첩 혐의’는 그가 간접적으로 관여한 탈북민 구출 활동에 씌운 누명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러시아는 올해 초 북한과 접경지역인 연해주에서 북한 측 요청에 따라 탈북민 단속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백 선교사의 활동을 문제삼아 체포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인권단체 대표 A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러시아에서 국제법에 따라 탈북민들의 난민신청을 받아주고 요청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조치를 하기도 했다.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한달 평균 탈북민 9명이 러시아에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한 이후 강화된 북한과의 밀착관계로 탈북민 단속을 강화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19 봉쇄조치에 따라 중국과의 접경지역을 폐쇄하고 탈북민 단속활동을 강화한데다, 중국 당국의 AI 등 통제시스템 구축으로 탈북민 구출 사역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당시 러시아는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난민신청을 한 탈북민 중 한국행을 원하는 이들에 한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지난해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탈북민 입국자 수는 2020년 229명, 2021년 63명, 2022년 67명에 이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39명이다. 탈북민 숫자 1000명대를 유지했던 코로나19 이전보다 대폭 감소한 수치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지난 코로나19 기간 동안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경색된 탈북민 구출 사역에 러시아의 탈북 경로가 어느정도 숨통을 터준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번 백 선교사에 대한 체포로 향후 탈북 루트가 더욱 협소해질 것으로 예상돼 정부와 교계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향후 탈북민 구출사역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정부는 러시아 영사 등 러시아 당국과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백 선교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한국교회는 백 선교사의 석방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