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랜스젠더리즘에 반대한다고 해서 성별불쾌감으로 인한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리즘을 둘러싼 문화 전쟁의 정치적 측면과 성별불쾌감(gender dysphoria)으로 고통받는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별불쾌감이란 개인이 자신의 성 정체성(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느낌)이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다고 느끼며, 이로 인해 감정적 고통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성별을 선택의 문제로 간주하는 문화적이고 법적인 시도에 저항하는 것이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성별불쾌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과 동의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그곳에 있고, 그들을 경청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에게 최선의 것을 깊이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별불쾌감을 경험하는 개인에 대한 연민과 존엄이 사회적 운동으로서 트랜스젠더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대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고, 여자도 남자가 될 수 없다
트랜스젠더 운동의 가장 큰 주장은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실제로 여성일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선호하는 대명사, 성전환 수술 및 주어진 성별이 아닌 인식된 성별의 화장실 사용을 요구하는 등 다양하다.
문제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어떤 식으로든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는 철학적 주장이라는 점이다. 남자 염색체는 여자 염색체로 조작될 수 없다. 미용이나 수술로 외모를 바꾸는 것이 개인의 생물학적 구성의 근본적인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마음의 심리학은 사람의 생물학적 표지자를 무시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 혁명은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한 거짓말을 믿도록 요구한다. 또한 진실과 거짓이 결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이유는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고 말할 권한이 있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성경은 트랜스젠더 혁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틀을 제공한다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사람들이 성별불쾌감을 경험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 세계관은 피조물의 붕괴가 있었고, 이전과는 다르며, 새로운 창조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임을 인정한다.(창세기 3장, 로마서 8장, 계시록 21장). 우주에서 우리 존재의 어떤 부분도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이는 피조물의 깨어짐이 우리 삶의 모든 부분, 심지어 우리의 정신과 마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그 정도와 방식은 달라도, 모든 인간은 우리 자신의 육체, 욕망 및 생각의 깨어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고, 언젠가 그들을 회복시킬 것을 인식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창조되었지만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정체성이나 감정을 수용하거나 발전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선한 욕망과 깨어진 욕망의 조합에 이끌린다. 창조, 타락, 구원에 관한 위대한 성경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온전함을 실현하지 못할 욕망을 경험하는 것에 놀라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겪거나 죄를 짓는 방식에 대해 결코 자신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4. 트랜스젠더 논쟁은 남성과 여성, 엄마와 아빠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남자 또는 여자가 되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이나 의지로 결정된다면, 이는 진정한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 다 문화적 고정관념에 기초한 구성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어린 소년에게 그가 진짜 소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어린 소녀에게 아버지로서 그녀에게 보이는 아버지의 독특한 반응이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생물학적 의미를 지워버리면, 성별 간의 상호작용과 아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차이를 알도록 하나님이 인간 존재에 넣어두신 대본을 파괴하는 것이다.
5. 기독교인들은 트랜스젠더 논쟁에 있어 확신과 연민이 모두 필요하다
트랜스젠더 논쟁은 논란의 소지가 가득하다. 이 논쟁에서 성경적 확신을 가지는 것은 친구, 가족 및 동료들과의 갈등을 의미한다. 게다가 어떻게 표현하든, 우리는 혐오자, 편협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다는 성경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 번영을 위한 참된 비전을 옹호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부한 설명이나 반사적인 반응은 피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그분께 있음을 계속 말해야 한다. 우리는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동정심 없이 행동하거나 말한다면, 세상의 어떤 확신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불변하고 완전한 말씀에 우리의 확신을 두되, 마음속에 연민을 갖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