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저자인 클라우디아 칼미코프(Claudia Kalmikov)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바이올라 대학교(Biola University)에서 기독교 변증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강연자이다. 다음은 칼럼의 요약.
1. 복음서에는 기자들을 난처하게 하는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당신이 이야기를 지어낸다면, 자신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겠는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그들을 나쁘게 보이게 하는 세부사항들을 생략한다. 따라서 저자를 나쁘게 보이게 만드는 모든 세부사항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아래에는 저자들이 역사적 정확성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복음서에 등장하는 저자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이다.
프랭크 투렉(Frank Turek)과 노먼 가이슬러(Norman Geisler)는 ‘나는 무신론자가 될 만큼 충분한 믿음이 없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A. 사도들은 우둔해 보인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막 9:32, 눅 18:34, 요 12:16).
B.그들은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두 번이나 잠들었다(막 14:32-41).
C. 그들은 예수님과 동료 제자들로부터 책망을 받는다. 마가복음 8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셨다. 그 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1절에서 신학적 문제로 베드로를 책망한다.
D. 그들은 겁쟁이들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열두 제자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흩어졌다. 그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여 숨어 지냈다. 심지어 베드로도 예수님이 예언하시자,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마 26:33-35).
E. 그들은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첫 번째 사람들이라고 기록했다. 제2성전 유대교(그 시대의 종교 문화)에서 여성의 증언은 효력이 없었다. 그들은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신 사실을 인정했다.
F.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했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다(요 2:18-22, 3:14-18, 마 12:39-41, 17:9, 22-23).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난 뒤, 그분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후에도 의심한다(마 28:17)!
복음서 기자들이 증언을 지어냈다면, 멍청하고, 변덕스럽고, 겁쟁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지어낸다면 이런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을 거라 확신한다.
2. 복음서에는 예수님에 관한 당황스러운 세부사항이 들어 있다.
A. 예수님은 가족들로부터 “정신이 나갔다”고 여겨졌다(막 3:21, 31).
B. 그분의 형제들도 예수님이 말한 대로 그분을 믿지 않는다(요 7:5).
C. 군중들은 예수님을 속이는 자로 생각한다(요 7:12).
D.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버렸다(요 6:66).
E. 그분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그분을 돌로 치려고 할 정도로 불쾌하게 했다(요한복음).
F. 그분은 술에 취한 자(마 11:19), 귀신 들린 자(막 3:22, 요 7:20 8:48), 미치광이(요 10:20)로 불린다.
G. 매춘부의 머리카락이 그분의 발을 닦았다. 이는 성적인 접근으로 간주될 수 있다(눅 7:36-39).
H. 그분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신 21:23, 갈 3:13)가 당시의 상식인 때에 유대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다[(사 21:23, 갈 3:13)
예수님에 대한 이 모든 비난과 말씀들은 그분의 신성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음서 저자들은 왜 이런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에 남겼을까? 답은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이 실제로 말씀하시고 행하신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글이 자기 삶을 어떻게 더 편안하게 해줄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3. 사도들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사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은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예수님이 사망할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이 사람들은 유대 전통을 버리고 예수께서 가르친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극심한 박해를 견뎌야 했다. 사도가 되는 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기득권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가난하고, 집도 없고, 박해받고,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그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사실, 즉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 때문에 순교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테러범들처럼)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도 죽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들은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도 결코 그들의 증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4. 사도들의 삶이 바뀌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들은 자신들이 직접 본 것을 전할 수 있는 능력과 담대함을 얻었다. 그들은 기적을 행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행 4, 5장), 유럽, 아시아, 중동 전역에서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본 증인들이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을 증언하다 체포되자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고 산헤드린 관원들에게 말한 뒤, 즉시 거리로 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했다.
이들은 겁쟁이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이 본 진리를 선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증언한 내용이 꾸며낸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사도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5. 사도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진실을 증언할 자격이 있었다.
성경의 정경이 정리되면서, 사도의 증언이나 권위의 문제는 어떤 글이 정경에서 성경으로 인정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목격자 또는 목격자 중 한 명과 매우 가깝게 접촉한 사람의 진술만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다. 이 때문에 복음서는 항상 목격자의 진술로 알려져 왔다.
A. 그들은 참석했다.
예수의 사도들은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을 목격한 증인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와 함께 살고, 먹고, 걷고, 말하고, 듣고, 배우고, 함께 지냈다. 예수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이었고, 그들은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분을 알고 있었다. 이로써 그들은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쓸 자격을 갖추었다.
B. 그들은 정확했다.
왜 우리는 하나가 아닌 네 개의 복음서를 가지고 있을까? 이 책들은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쓰였기 때문에, 기술된 사건에 대한 증인이 한 명 이상이었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관점이 들어 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게 하려고 기록되었다. 마가복음(베드로가 목격한 증언을 근거로)은 예수께서 종이 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로마 이방인들에게 쓴 글이다. 누가복음은 신분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하나님 구원의 보편적 성격에 대한 확실성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 이방인들에게 쓰였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누구인지 재정립하고, 교회를 위협하는 당시 만연한 영지주의 가르침에 도전하기 위해 쓰였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만남을 담고 있고 거기에 초점을 둔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과 관점을 염두에 두면, 복음서가 왜 어떤 곳에서는 서로 다르고 부정확하게 보이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윌리스는 모든 기억이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사람마다 세부사항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공백을 채울 수 있다. 복음서는 단순히 다른 관점에서 기록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일부 작은 세부사항의 차이가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복음을 반박하지는 못한다.
C. 그들의 이야기는 확증되었다.
성경에 있는 복음서를 버린다면, 요세푸스(Josephus), 타키투스(Tacitus), 플리니우스(Pliny)와 같은 1~2세기 믿지 않는 역사가들의 증언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재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으며, 사흘 뒤에 부활한 후 사도들에 의해 목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복음서가 정확하지 않았다면 (당시에) 복음서에 언급된 사람들 중 여전히 생존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나서서 반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6. 기독교적 음모가 없었다.
여기에 복음서 저자들이 가담했는지 알려면 잘 구상된 음모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월리스는 잘 짜인 음모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 소수의 사람들
B. 근접성
C. 원활한 의사소통
D. 시간 경과에 따른 보호
E. 압박 없음
12명의 사도가 있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음모를 달성하기에 많은 숫자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고, 사도들이 박해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후 로마제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의사소통은 극도로 느려졌다. 그들은 적시에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장소에서 심문을 받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공범 중 누가 거짓말을 포기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잘 구상된 음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도들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들의 거짓말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지내기 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관계가 있었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보냈지만, 그 후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지내며 우정과 형제애의 관계를 시험받았다. 특히 각자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더욱 그랬다.
끝으로 성공적인 음모에는 압박이 없다. 사도들은 공격적으로 박해를 당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탈리아와 인도로 흩어졌다. 12명 모두 믿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순교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칼에 죽임을 당했으며, 도마는 폭도들에게 살해당했다. 자연사한 사람은 요한뿐이었다. 열두 제자 중 누구도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한 명도 없었다.
보시다시피, 복음서 기자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은 역사적 배경을 알면 웃길 뿐이다. 다음번에 이러한 이의가 제기될 때, 이것을 가지고 당신이 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프랭크 투렉은 “지식의 저주는 단순히 당신이 모르는 것만이 아니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