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김익두 목사의 외손자 며느리 정명자 권사(달라스 좋은씨앗감리교회)가 뉴욕을 찾았다. 정명자 권사는 지난 6월 21일 뉴욕주신교회(담임 김용익 목사) 간증찬양집회를 시작으로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찬양간증집회를 진행했고 30일 선한목자교회(담임 황영진 목사)에서 마지막 공연을 펼쳤다.
달라스에 거주하는 정명자 권사는, 근래에 찬양간증집회를 중단했다가 다시 바이올린을 들었다. 외조부 김익두 목사의 순교자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서다. 정명자 권사는 김익두 목사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기록으로 인해 신사참배를 한 것으로 후세들에게 오해받아, 뒤늦게야 순교자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지금도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정명자 권사는 신사참배에 대한 오해받은 부분을 설명할 때면 노쇠한 몸에서 어디서 힘이 솟는지, 김익두 목사가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고초를 겪었던 상황들을 열정적으로 상세히 설명했다.
정명자 권사는 KBSTV 관현악단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트리오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그런 그가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 수많은 은혜의 간증이 있다.
세상의 화려함을 떠나 교회를 묵묵히 섬기는 길로 삶을 전환했던 정명자 권사의 찬양간증집회는 그 자체로도 은혜가 있지만, 그의 집회가 주목받는 것은 바로 김익두 목사의 순교자 기념비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김익두 목사는 신사참배에 절대 굴하지 않았다"
정명자 권사는 김익두 목사가 서울 승동교회를 8년째 시무하던 때 신사참배 강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에서 형사를 보내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했으나, 김익두 목사가 끝내 굴복하지 않자 강제로 체포해 극심한 고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한 고문이 1개월간 지속됐고, 김 목사가 거의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됐을 때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서 인계를 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승동교회 강단에는 두 번 다시 설 수 없게 됐다.
정명자 권사는 김익두 목사가 결정적으로 오해를 받게 된 계기가 일제에 의한 사진 조작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던 김익두 목사를 일본 경찰들이 강압적으로 인근의 신사로 끌고 가 참배를 강요했는데, 그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자 거꾸러뜨리려고 걷어찼고, 신사 앞에 쓰러진 그 때에 사진을 찍어 마치 신사참배를 한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정명자 권사는 "외조부 김익두 목사님이 당한 오해는 정말 억울한 것이었고, 지금도 오해한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김익두 목사님이 신사참배에 절대 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평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교자 기념비 세우기 위해 다시 연주할 것"
정명자 권사는 8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음악 트리오로 손꼽히며 국내 행사 중에서도 국빈급에만 참석했던,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정 권사의 실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정명자 권사는 최근 건강 등의 이유로 공연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명자 권사는 외조부 김익두 목사의 명예회복과 기념비 건립을 위해 다시 연주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 권사는 이번 뉴욕 방문을 시작으로 미주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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