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은 영적인 질병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한국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갖고 마약중독재활치료센터 등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국내 마약중독재활치료 권위자로 꼽히는 조성남 국립법무병원(법무부 치료감호소) 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월 5일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법당국에 적발된 마약 사범은 약 1만 8천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한민국 마약 사범자를 추산한 지난 통계 가운데 역대 최대치다. 또 지난해 10대 마약사범자는 481명으로 2017년(119명) 대비 4배나 솟구쳤다.
조성남 원장은 “SNS 등지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고,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남용되면서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약중독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마약 사범자 숫자에다 음지 활동 영역까지 합하면 약 100만 명의 마약중독환자를 추산할 수 있다”고 했다. 조 원장은 “대마초, 코카인, 엑스타시 등 불법 마약류는 제조나 소지부터 접근이 쉽지 않다”며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향정신성의약품 같은 의료용 마약류 처방으로 인한 중독자 급증 추세”라고 했다.
조성남 원장은 “향정신성의약품은 환자가 요구하면 의사로부터 처방받을 수 있어, 현재 법적 제재는 없는 상황”이라며 “중독자들이 의원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알음알음 처방받고 인터넷 등지로 유통하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일대에서 자신의 롤스로이스 차량을 끌다 도로변을 덮쳐 20대 여성을 중태에 빠뜨린 신모(28)씨. 사고 당일 구금 17시간 만에 석방된 신 씨는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과 디아제팜을 투약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립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케타민 등 7종의 향정신성의약품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8월 11일 구속된 신 씨는 경찰 수사에서 “의료 목적으로 처방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신모씨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한 의사 3명도 현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조 원장은 “일부 의사들이 돈벌이로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며 “의사들이 환자의 향정신성의약품 처방 요구 목적과 그 의료적 근거를 명백히 알고, 환자의 약물 중독 여부를 종합 판단한 뒤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조 원장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은 프로포폴, 졸피뎀, 펜타닐 등이 있다. 펜타닐은 말기암 환자에게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로 단 2mg만 복용해도 치사량에 이른다. 지난해 미국에만 10만여 명이 이 약물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지난 6월 22일 발표한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전국 초중고학생 1만 7천 140명)에 따르면, 전체 대한민국 청소년의 10.4%는 펜타닐패치를 사용한 경험이 있고, 주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성남 원장은 “마약 등 중독자들은 생활이 불규칙적이고, 불법을 좋아한다. 마약중독자 본인의 중독상태와 이로 인해 타인이 받을 피해를 인지시킨 후, 규칙적 생활·준법정신·책임감 강화·정직성 함양 등 건강한 가치관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약 공급자에 대한 처벌은 엄격히 하되, 마약 투약자에 대한 처벌 관행을 ‘단속’에서 ‘치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치료보호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법무부 등과 함께 지난 6월 19일 ‘사법-치료-재활 연계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의 시범운영을 밝힌 바 있다. 이 모델은 검찰이 마약류 투약으로 검거된 사범자 중 중독재활치료 의지를 밝힌 대상자를 선별, 국가지정병원에서 중독재활치료 과정을 온전히 이수할 경우 선도조건부로 기소유예하는 제도다.
다만 조 원장은 이를 뒷받침할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원장은 “미국 약물법원(Drug Court·드럭 코트)처럼, 법원이 약물중독자의 치료이수 여부를 감독해 ‘불성실’ 이수일 경우 다시 기소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국립법무병원이 해마다 수용하는 인원은 약 70명이다. 국립부곡병원, 인천참사랑병원 등 전국 3개에 불과한 마약중독재활치료 전담 민간 병원의 연간 수용 인원도 300명에 그쳐, 올해 마약 사범자 1만 8천 명의 약 2% 정도만 중독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관련 국가 예산은 마약중독환자 200여 명이 1달간 받는 치료비 수준인 8억 2천만 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아울러 “병원에서 퇴소한 뒤 생활 속에서 마약 단약을 유지하면서 일상 복귀를 돕는 재활센터인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는 국내 5곳에 불과하다”며 “국가지정병원 및 다르크 센터 확대를 위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마약중독은 영적인 질병으로 개인적으로 극복은 어렵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 중독자 본인이 중독을 직면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서로 피드백을 주는 자조 모임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조 원장은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제언했다. 그는 새로남교회(담임 오정호 목사) 소속 서리집사이기도 하다. “마약중독은 영적인 질병입니다. 마약을 극복한 사람들은 중독자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조모임에서 간증을 전하고 중독 치료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마치 전도자의 열정처럼 그 파급력은 폭발적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한국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갖고 마약중독재활치료병원이나 다르크 센터 확대, 인적자원 확충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조성남 원장은 공교육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을 상대로 마약중독예방 교육이 선행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원장은 “탈(脫)마약중독자들의 경험담 등 마약중독의 경각심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도 마약에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