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협은 “최근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의사 부족 사태, 응급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 등등 우리나라 의료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의료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예고되었던 문제들”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적극적인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 등은 최근 언론을 통해 부각되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예고되었다. 상급병원 응급실 병상이 부족해 중환자조차도 휠체어나 바닥에 자리를 펴고 대기하는 상황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인가. 우리 의료인들은 과로사 등의 위험에 처하면서도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의료 현장을 지켜 왔으나 이제는 그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통감하는 바”라고 했다.
이어 “의료에 있어 주요 과로서,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필수 분야이다. 그런데 20년 전부터 외과와 산부인과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종합병원이나 심지어 공공병원에서도 산부인과를 포기한지 오래다. 외과 의사들은 종합병원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너무나 낮은 진료 수가에 있다. 병원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버틸 장사는 없다.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소아과, 내과로 이어지면서 전공의 미달사태로 번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복의협은 “정부는 이런 사태 앞에 의대 정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의사가 많아진다고 필수 의료 공백이 해결된다고 보는가.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며 “지금도 국내 고급 의료인력 중 해외로 취업이민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또 전공의를 하지 않고 일반의로 개원하려는 의료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의료계에 이런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첫째, 기형적인 수가 제도에 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고 하여, 모든 의료기관이 국가건강보험을 반드시 가입하게 되어 있다”며 “즉 모든 급여 제도에 대해 국가에서 정한 수가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한복의협은 “문제는 이 수가의 원가 보존율이 7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즉, 1만 원의 진료를 제공하고 7천 원의 보상을 받는 것이다. 임대료, 인건비 등 모든 부대비용은 고스란히 개원의와 의료기관의 몫”이라며 “이런 현실 가운데 개업했다가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줄폐업하는 의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견디다 못해 의료인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비급여 제도가 있으니 위헌이 아니란다. 급여 진료에 대한 적자분을 비급여로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이는 진료 대신 미용이나 피로회복 수액 등 비필수적인 진료로 충당하라는 뜻”이라며 “의사들이 환자를 기피하고 엉뚱한 돈벌이를 하라고 떠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불합리한 수가 제도가 의료인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비급여 진료행위를 개발하고 유인하는 잘못된 진료 관행으로 내몰아 결과적으로 지금의 필수 의료 공백 사태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둘째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이다. 의료전달체계란, 1차 의료기관에서 기본적이고 흔한 질환들에 대한 진료를 담당하고, 2차 의료기관에서 그보다 복잡하거나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에 대한 진료, 3차 의료기관에서는 중증 환자, 다학제적 진료가 필요한 응급 환자나 희귀 질환 등을 진료하는 의료 분업 체계를 말한다”며 “그런데 국내 의료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상당히 모호하다.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상급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의원에선 환자에게 ‘진료의뢰서 떼러 왔다’고 통보받고 의뢰서를 써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한복의협은 “이는 의료전달체계가 형식적인 절차일 뿐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비응급 환자들이 무조건 응급실부터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암이란 말만 들어도 무조건 서울 큰 병원으로 직행한다”며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과로로 쓰러지는 의료진이 속출하는데, 지방이나 2차 병원은 환자가 없어 문을 닫을 형편이다. 이것을 의료인의 잘못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이들은 “셋째, 이런 문제가 의료인의 사기 저하와 피로로 이어지고 있다.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의료인들의 몫이다. 환자가 많으면 과로로 이어지고, 적으면 경영 압박,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사명감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인턴, 전공의는 교육의 대상이 아닌 저가의 노동력으로 취급받게 된 지 오래다. 간호사들도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해 의료 현장을 떠나다 보니 만성적인 구인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문제들은 병원과 의료종사자 간 노사관계로 풀어낼 수 없다. 병원에 더 좋은 처우를 요구하며 투쟁해 쟁취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제야말로 의료 현장의 진정 어린 호소에 정부와 국민이 귀 기울여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한복의협은 “최근 대구에서 10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해당 병원 응급실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며 “의사의 분명한 과실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제쳐놓고 아무 죄없는 의사와 병원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 사명으로 삼고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켜봤다. 최근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며 “우리는 필수의료공백의 원인이 비합리적 수가체계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보람과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의료현장에 있음을 절감한다”고 했다.
이어 “의료인은 누구보다 의료 현장을 잘 알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믿지 못한다면 어느 환자와 가족이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맡기려 하겠는가”라며 “그런데도 환자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절박한 호소를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며 환자와 의료인 사이를 이간질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마땅히 근절돼야 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필수 의료를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한복의협은 “이 모든 문제가 급여 진료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만든 매우 불합리한 의료수가 체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국회가 이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표를 의식해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의료인만 무한 규제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될 것임을 엄숙히 경고한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호소한다. 임시방편 땜질식 해결방안을 좇을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의료 현장의 애끓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며 “오늘의 문제는 의료인을 불신하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의료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원인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찾게 되기를 다시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