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국가보훈처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국제관계대학)에서 개최한 ‘이승만 대통령 재조명’ 좌담회의 내용을 1일 전하면서 이 같이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윌리엄 스툭 조지아대 석좌교수, 그렉 브래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 데이비드 필즈 위스콘신대 동아시아센터 부소장 등이 참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툭 교수는 “이승만을 ‘친일’로 규정할 명분(justification)이 없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승만은 한국을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하에 둘 것을 주장했다. 이는 일본 통치의 영구화가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조기 독립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며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은 강한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이승만과 일본은 매번 충돌했다. 그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지속적으로 저항했고, 일본에 이익이 되는 미국의 정책엔 사사건건 반대했다”고 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친일 청산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해 필즈 부소장은 “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그들(친일 인사들)이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것이었고, 대답은 ‘그렇다’였다. 이념의 문제가 아닌 실용적 결정이었다”며 “그는 ‘친일’의 범위를 훨씬 더 넓게 잡고 더 많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당시 남한의 인구 반을 청산해야 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의 입장에서 시급한 문제는 국가 건설 및 안보·치안 유지였다. 그는 이후 친일 인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친일’ ‘협력’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가 매우 복잡한 정치역학적인 문제다. (한 측면에서) 단순 평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고 한다.
“이승만이 ‘미국의 꼭두각시’였다”는 주장에 대해선 “왜곡이다. 솔직히 어떻게 그런 인식이 가능한 지 모르겠다”고 브래진스키 교수는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를 미국의 ‘앞잡이’(stooge) ‘꼭두각시’(puppet)라고 부르는 건 북한, 중국 당국이 만든 문서 외엔 본 적이 없다”며 “그는 미국의 전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미국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한국의 통일 등) 그의 목적을 위해 미국의 입안자들을 효과적으로 휘두르기도(manipulate) 했다”고 했다.
특히 필즈 부소장은 “6·25 전쟁 당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이승만의 ‘비타협성’을 이유로 그를 제거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했다”며 “이승만은 6·25 전쟁이 통일이 아닌 휴전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은 ‘에버레디’라는 작전을 통해 그의 제거를 구상하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미 군정청의 존 하지 중장(군정 사령관)이 미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에 대해 욕설을 쓰면서 골치가 아프다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분단의 원흉’”이라는 주장에 대해 스툭 교수는 “이승만은 한반도를 미·소가 분할 점령하는 데 어떤 영향력도 미칠 수 없었다. 일단 한반도의 분단은 미·소 열강의 결정과 책임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부 추진은 소련과 북한 김일성이 공산화를 이미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까지 공산화되는 사태를 막으려는 의도였다”며 “‘이승만이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한국 내 좌파 세력의 비판 중 가장 큰 문제는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는 데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한반도 이북에서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지 말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