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유수 언론들로부터 ‘아시아판 쉰들러 리스트’로 칭송받는 목사가 있다. 바로 천기원 목사(67)다. 천 목사는 현재까지 중국에 있는 탈북민 1,300여 명을 한국이나 미국 등 제3국으로 안전히 인도해왔다. 그는 2009년도에 현재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탈북청소년대안학교 ‘두리하나 국제학교’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탈북 성인과 청소년들이 한국에 정착하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본지는 두리하나선교회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천 목사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탈북민 구출 사역을 시작한 계기는?
“지금은 목사지만,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지 않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목사가 되도록 계속 서원하셨다. 그 결과 40살 때 천안대학교(현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도에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의 한 도시에 방문했는데, 두만강변으로 시체가 둥둥 떠오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중국인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굶어 죽은 북한 사람의 시체라고 하더라. 길거리에는 중국인들로부터 두들겨 매 맞는 북한 사람들도 보였다. 꽃제비들은 내게 돈을 달라고 계속해서 구걸했다.
충격을 받았다. 한민족인 북한 동포들이 탈북한 뒤 중국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2년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러한 광경이 다시 목격됐다. 목회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러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1998년부터 사역을 시작한 것이 두리하나선교회다. 올해로 25년째를 맞이했다.”
-탈북민 구출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으니 탈북민 대부분은 자유를 찾아 중국으로 넘어간다. 이들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브로커 등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브로커에게 후불을 약속하고 진행되는 탈북 과정이, 이후 비용을 갚으려는 탈북 여성에게는 중국에서 브로커와 포주가 연계된 인신매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는 사이버 음란 화상채팅을 강요받는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이들은 인신매매 포주의 감시 하에 방안에 감금된다.
두리하나선교회는 인신매매범에게 붙잡힌 중국 내 탈북 여성을 구출하는 데 초점을 둔다. 팀을 이뤄 음란 화상 채팅방에 손님으로 위장 전입한 뒤 탈북 여성과 접촉해 구출 작전을 진행한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여성 본인이 우리 단체에 구조 요청을 해야, 구출이 진행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인신매매나 다른 형태로 어려움을 겪는 탈북 여성들을 구출하고 있다.
이 밖에 여러 구출 방법들이 있다. 이후 이들을 구조하면,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 등지로 인도해, 유엔 난민협약 절차에 따라 탈북민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로 송환되도록 일련의 과정을 돕고 있다. 우리 단체 자체로 탈북민 구출 사역팀을 따로 조직해 운영하고 있고, 여기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 구출 사역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탈북 여성 구출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는?
“최근까지 탈북민 성비가 여성과 남성이 대략 8:2에 이를 정도로 구조화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나 요즘이나 중국인 대부분은 포상금을 노리고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민들을 공안에 신고한다. 그래서 탈북한 북한 남성들은 중국에서 숨을 곳이 없어 중국 공안에 붙잡히고, 북송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서 숨을 곳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살고자 선택한 술집, 인신매매 등 스스로 성(性) 상품으로 전락하는 방법이다. 이렇게라도 중국인들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이다.”
-최근 탈북민 구출 사역 현황은 어떠한가?
“과거에도 어려웠지만, 지금 중국이 탈북민 구출 사역 관계자들에 대해 처벌 수위를 최대치로 높여 사역이 더 힘들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재 탈북민 구출 사역은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 탈북민을 구출하는데 드는 비용은 과거와 달리 최소 1,500만 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중국에서 제3국으로 가는 탈북 루트도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 등을 보유한 중국이 최근 AI 기술까지 접목시켜 주요 인물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여러 어려움들이 많다.”
-현재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민들 현황은 어떠한가?
“북한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지했던 국경봉쇄 정책을 오는 6월 해제함에 따라 북·중 교역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중국 수용소에 갇혀 있던 탈북민들이 대거 북송된다는 사실도 내포한다. 이들이 북송되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 현재 내가 아는 사람 5명도 중국 외국인수용소에 붙잡혀 북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탈출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한 친구는 소식통을 통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나를 북송되도록 버려두시느냐’고 했다. 마음이 아프다.”
-중국이나 북한은 어떻게든 탈북민 구출 사역을 방해할 텐데.
“중국은 국가고 우리는 개인 선교단체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도 같다. 시간이 갈수록 싸움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탈출 경비도 많이 오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끝이 난다. 이 때문에 많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기도해주시고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시면,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재북송되지 않고 자유를 찾는 길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사역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신 적도 있는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나를 지목하고 맹비난한 적도 있다. 그럴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항상 받는다. 또 중국에서 나와 함께 연합해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 몇 명도 공안에 붙잡히거나,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정말 위험한 사역이다. 한국교회 성도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주셔야 한다.”
인터뷰 중간 두리하나선교회의 탈북민 구출 사역에 도움을 받고 한국으로 망명한 40대 한 탈북 여성이 천기원 목사를 찾았다. 15년 만의 방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중국 인신매매범에 의해 붙잡혀 고통을 받던 중 중국 A 도시에서 천기원 목사와 동역하는 한 선교사를 통해 구조 요청을 하고, 결국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하나님은 없고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내 인생을 역전시켜주시고, 하나님을 믿는 축복의 나라 남한으로 인도해주신 목사님께 감사하다”며 “천 목사님과 사모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으니까”라고 울먹였다.
-천 목사님은 구출과정에서 탈북민에 대한 신앙적인 지도를 하고 계시는가?
“당연하다. 우리의 탈북민 구출 사역도 결국 복음 전함이 목적이다. 복음 안에는 인권도, 자유도 모두 포함돼 있으니까. 이들에게 되찾아 주려는 자유도 결국 복음을 듣기 위한 수단이다. 즉 복음을 들을 자유가 보장돼야 신앙을 선택할 자유가 뒤따르니까. 구출 사역 과정에서 보통 복음을 전한다. 물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에 따라 자유의지를 주셨고, 철저히 자유의사에 따라 신앙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지, 신앙을 가지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점은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지만, 이것이 당신의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예수님 당신의 목적인 복음 전도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탈북민 구출 사역도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예수가 목적이 돼야 한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 예수가 목적이라면,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도움은 있는가?
“별로 없다. 과거 한국교회는 북한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통일이 최우선 가치였다. 그러나 최근 젊은 사람들은 ‘통일이 필요 없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한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북한 주민들이 신앙의 자유 등 자유를 빼앗기며 고통받고 있는데, 자유를 누리며 풍족히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태연히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매우 아파하실 것 같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자유와 풍요를 주신 이유는 같은 동포인 우리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도우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건들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자유에는 책임이 있다. 한국교회가 신앙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기본적인 천부인권조차 빼앗긴 북한 주민을 외면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죽은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너의 자유로 이 땅에서 무엇을 했는가.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무엇을 해줬는가’라고 책임을 추궁받을 것이다. 지금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곁에 와 있는데도, 한국교회가 그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북한 주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심판대에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도 탈북민 구출 사업에 대한 지원이 있는지 궁금하다.
“전면에 나서지는 못해도 헌법에서 우리 자국민으로 명시된 북한 주민의 자유를 되찾아 주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 같은 일은 우리 같은 한 개인 단체가 하고 있다. 최소한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를 통해 중국에 억류돼 북송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 주민을 조용히 데려오면 될 텐데,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결 의지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국가가 국민 한 사람의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문제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탈북민들이 지금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위기에 처해 있는데, 우리 정부가 조용히 중국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한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본다.”
-서독이 1963년부터 89년까지 이른바 ‘프라이카우프 정책’을 통해 동독 정치범 총 33,755명을 서독으로 송환하는 사업을 펼쳤다.(기자 주-당시 서독이 서독교회와의 협업을 통해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을 서독으로 송환했던 사업. 현물로 1인당 약 5000만 원을 투입했다고 알려졌다. 소요된 총비용만 약 34억 6400만 마르크(약 1조 8000억) 상당). 이 정책이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에서 정책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행정부나 정당들이 권력 창출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탈북한 북한 주민 한 생명을 구출하는 정책 실행의 가치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반면 독일이나 미국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국가이기 때문에, 복음적 정신을 국가 정책의 밑바탕에 깔고 있다. 기독교적 기본 가치가 자유라면, 이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풍토도 형성돼 있다. 당시 서독도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을 기초로 자유를 빼앗긴 동독 사람을 구출하는데 최우선 가치를 뒀기 때문에 돈이 들더라도 이 정책을 실현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가 ‘프라이카우프’ 정책을 두리하나선교회 등 탈북민 구출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NGO 단체들과의 협력 사업 차원으로 변용시켜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꿈 같은 이야기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최고의 작품이다. 서구나 독일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으나, 우리 민족은 감정주도적이라 현실성이 제로(zero) 같다. 국내 정치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완전 불가능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신다면 불가능은 없겠다. 생각만 해도 멋진 계획이다.
외국이 그렇게 한다. 정부가 나서면 외교적인 문제와 국가 간의 이해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정부가 선교회나 NGO 단체의 탈북민 구출 사역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생각도 못 하는 것 같다.”
-화제를 바꿔, 천 목사님은 2009년 탈북청소년대안학교인 ‘두리하나 국제학교’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계시다.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지가 궁금하다.
“교육 등록금, 먹고 자는 것 등을 탈북민들에게 100% 지원하고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주일예배를 잘 드리자’이다. 현재 기숙학교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구출된 탈북민이 한국으로 넘어오면 이들을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잘 뿌리내리고 성장하여 건강히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탈북민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에서 2~3년 정도 떠돌다 대한민국에 온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 도착할 당시 나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20살 즈음에 가깝다. 동년배 학생들보다 사회진출 시기가 5~6년 정도 늦는다. 일단 초등학교 과정을 기본적으로 교육하고, 중·고등학교 과정에 들어갈 때는 검정고시를 치르도록 준비시킨다. 단축된 시간에 컴퓨터, 커피 바리스타 과정 등 각자의 관심 분야를 찾도록 돕고, 이후 1:1 맞춤 교육을 진행해 사회진출을 돕고 있다.”
-탈북 청소년 교육에 있어 강조하고 계신 점이 있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1등보다 ‘꼴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늦게 출발해도 좋다. 다만 바르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고 말이다. 마지막 결승점에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1등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1등이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해질 수 있다. 여러 결점이 있어도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 뜻대로 바른 길로 가고자 노력을 한다면,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동이 된다. 성공보다 이들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진실이다. 억지로 자기 의로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는 생각이 먼저 중요하다. 오히려 자기 의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더 큰 실수를 초래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이런 생각만 갖고 있어도 하나님은 귀히 보신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만 드리면, 그 입술의 고백이 어느새 행동으로 옮겨지고 습관으로 형성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저도 모든 탈북 청소년들에게 새벽기도를 드리도록 독려한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며’ 하루를 시작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천기원 목사에게 달려들었다. ‘주춘미’라는 이름의 여성 대학생도 천 목사 옆에 앉아,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탈북민인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입국해 체류한 지 올해로 8년째를 맞았다고 한다. 현재 춘미 씨는 대학원에서 방송예술 관련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천 목사에 따르면, 춘미 씨는 탈북 이후 청소년 시절 한국에서 말없이 혼자 지냈다. 생계를 위해 새벽까지 일하느라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할 시간이 없던 춘미 씨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돼 의사로부터 ‘하반신 마비’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있던 춘미 씨. 그녀는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배웠던 성경구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임을 믿어야 할찌니라’(히브리서 11장 6절)가 떠올랐다. 즉시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 목사의 기도와 조언을 받고 병상에서 말씀을 계속 암송하고 기도하던 중 사고 발생 45일 만에 두 다리로 걷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녀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한 일”이라고 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2018년 4월 TV조선 다큐멘터리 ‘엄마의 봄날’에서 ‘탈북 엄마와 춘미의 기적’ 편으로 방영됐다. 제51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TV 부분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천 목사는 “나사로의 기적 등 성경 말씀이 내게 레마의 말씀이 되려면 암송을 하며 이를 믿고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춘미 씨는 “다치고 나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싶어졌다”며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이니까. 제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최선을 다해 살면 누군가를 돕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다시 천기원 목사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학교 운영에도 비용이 많이 들 텐데.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문제인데 안 하니까 문제다. 한국교회도 북한 선교를 하고자 한다면 도울 분야는 너무도 많다. 두리하나선교회를 비롯한 탈북민들을 돌보는 단체들을 돕는 등 경로는 많이 존재한다. 각 교회 여선교회에서 1년에 한 번이라도, 한창 자라나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식사 봉사를 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다.”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위기마다 만나의 축복으로 하나님이 부족함 없이 해결하고 계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시편 23:1)처럼, 필요한 건 많은데 부족함은 없다. 단지 바람이 있다면, 월세가 비싸고 주위에서 청소년 아이들이 떠든다고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데, ‘두리하나 국제학교’의 자체 건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거다. 청소년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고 안전한 장소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