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필사본 성경과 기도서에 실린 삽화를 비롯한 성서화에는 천상의 하나님 보좌 주변에 하나님을 호위하는 네 가지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이 자주 등장한다. 이 네 가지 생물은 선지자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본 그룹천사(Cherubim)를 말한다.
여기 나오는 네 생물들의 얼굴 모양은 하나님이 창조한 생물들을 대표한다. (NIV 스터디바이블) 사람에게는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었고 사자는 야생동물 중 가장 강하며 황소는 가축 중에서 가장 힘이 세며 독수리는 새 중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이다.
이 네 생물은 요한계시록에 다시 나타나는데 다만 순서가 달라졌을 뿐 그 역할은 에스겔서와 같다.
2 세기 초반, 리용의 성 이레네우스(St. Irenaeus of Lyons. 120-202 AD)는 사복음서와 네 생물체를 최초로 연결시켰다.
그가 영지주의에 대한 이단논박(Adversus Haereses)이란 글에서 에스겔서에 나오는 생물체에 대하여 순서대로 그 성격을 설명하였다. 사자는 왕권, 황소는 희생, 사람은 신의 육화, 독수리는 교회를 지탱하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하면서 사자는 마태, 황소는 마가, 사람은 누가, 독수리는 요한복음의 상징으로 연결시켰다.(주1)
그 후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72-373 AD)와 성 제롬(St. Jerom.347-420AD)과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 AD) 등 초기 교부들이 네 생물과 사복음서의 연관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있었다.
4 세기 후반의 성 제롬(히에로니무스)은 성 이레네우스와 달리 네 생물과 복음서 저자를 연관시켰다.
마태복음서에는 신이 육화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므로 천사로 상징된다. 마가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광야에서 부르짖는 소리' 즉 사자의 포효만큼 외로우면서도 강력하다고 표현했다. 누가복음서는 희생제물이라는 주제를 강조했으므로 황소가 상징이 되었다. 요한복음서는 독수리의 비행과 닮은 높은 영성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독수리가 상징동물이 되었다. (주2)
제롬이론의 특징으로 첫째는 에스겔서의 네 생물의 순서와 복음서 순서가 동일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각 복음서의 첫 장에서 나타나는 성경의 장면과 신학적 의미를 네 생물의 특성과 연관시켰다는 점이다.
네 생물에 대한 신학 논쟁에 있어서 그룹 천사 중 황소와 독수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었으나 사람 (천사)과 사자에 대한 해석이 가장 대조를 보였다.
중세의 화가들에게는 성 제롬의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7세기의 카라바조 (Caravaggio)나 램브란트 (Rembrandt)의 성서화도 중세의 체계를 따랐으며 현대 성서화 연구자들의 사복음서 상징동물에 대한 해석은 제롬이론으로 통일되었다. (주3)
마태복음서의 상징동물은 사람(천사)이다. 성 제롬과 성 아타나시우스 그리고 성 이레네우스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은 사자가 마태복음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그는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고 하면서 왕으로서의 인격은 요한계시록(5:5)의 사자란 동물로 대변된다고 보았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 (magi)가 동방으로부터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에게 경배하러온 기사가 나오는데 왕의 상징은 계시록 구절대로 사자라는 것이다. (주4)
마가복음은 제롬이 제시한 사자가 상징동물이다.
그러나 성 이레네오스는 마가복음의 첫 구절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예언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로 시작한다. 따라서 예언자의 영성이 높은 곳에서부터 인간에게 독수리와 같이 내려오는 말씀이므로 상징동물은 독수리라고 하였다.
누가복음의 상징동물은 황소이다.
누가복음 제1장에는 세례요한의 잉태에 얽힌 제사장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 등장한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로 드리는 희생의 인격을 표현하기 때문에 송아지가 상징동물이 된 것이다.
요한복음서의 상징은 독수리이다.
성 제롬은 요한복음서가 다른 복음서 보다 영적으로 더 높이 날아오른다고 하면서 요한복음은 천사들의 공간 위로 솟아올라 성부께 직접 올라간다고 하였다.
네 생물에 대한 교부들의 주장이 당시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사복음서와의 연관은 성경에 없는 내용이므로 중세 이후에는 교회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따라서 미국성경(NIV 스터디바이블)에서도 네 생물이 사복음서의 상징동물로서 중세 화가들의 그림에 많이 나타난다고 할 뿐 사복음서와의 실제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중진 교역자들은 사복음서 강해서와 설교를 통해 마태복음은 사자복음, 마가복음은 송아지 복음, 누가복음은 사람복음, 요한복음은 독수리복음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주5)
이러한 주장은 초기 교부 4인의 이론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짜깁기이다. 특히 누가복음의 상징이 사람이라고 주장한 교부는 하나도 없는데 무슨 신학적 이론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네 생물은 하나님 보좌를 옹위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온 인류의 대표라는 성경 본문에 충실해야한다. 사복음서와의 연관은 초기 교부들의 이론일 뿐 대중에게는 성경이 없던 암흑의 시대에 화가들이 그림을 통해 대중에게 성경내용을 전달하려 했던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여야 한다고 본다.
주1) 이레네우스. 이단논박 St. Irenaeus of Lyons - Adversus Haereses 3.11.8 (in ANF 1.854-55)
주2) 제롬, 마태복음 주석서문 요약발췌문 St. Jerome - Preface to the Commentary on Matthew (summary and excerpts from NPNF 2, 6.1036-37)
주3) 스테파노 추피 Stefano Zuffi , The J.Paul Getty Museum, p.12
주4) 어거스틴, 복음서 기자의 일치에 관하여 St. Augustine of Hippo - De consensu evangelistarum 1.6.9 (in NPNF 1, 6.168-169)
주5) 이요한, 마태복음 강해(2006.11.6.) / 길자연, 한기총 설교(2012.4.8.) / 박성화, 마태복음강해설교 2012. 빌라데비아.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