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목사는 “안식 후 첫날 새벽,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여인이 무덤을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어쩌면 한참 후에나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며 “유대인 지도자들의 눈초리와 로마 경비병들의 위압에도 용기를 내서 무덤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면, 영광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따지고 보면, 역사의 변환점에서 기폭제가 된 것은 늘 필부필부(匹夫匹婦)였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를 한땀 한땀 떠가며 살아온 보통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고 개혁이 일어났다”며 “예수님 또한 당시의 유명인들, 셀럽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그런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이러한 무명씨(無名氏)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고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올해로 117년을 맞이하는 우리 성결교회의 처음도 마찬가지다. 전기기술자가 되겠다고 도일(度日)한 김상준과 정빈이라는 두 젊은이가 동경성서학원을 들어가면서 성결교회의 씨앗이 뿌려졌다”며 “중생·성결·신유·재림이라는 전도 표제를 들고 경성 염곡에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세우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었을 때도 누구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하지만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나? 일제의 폭력 아래 암울했던 민족을 깨우고 세계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이 이 땅에서 일어났을 때 성결교회는 그 한가운데서 가장 큰 성장을 일구었다.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뜨거운 성결교회였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예루살렘을 들썩이게 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자 숨어 있던 제자들은 용기를 내어 각자의 방언으로 예수를 증언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교회가 세워지고 그 은혜가 우리에게까지 임하여 오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교단 안에 이런저런 소리가 많다. 그러나 저는 오늘 우리에게 있는 작은 소동들이 결국 교단이 변화하고, 부흥하는 원동력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믿는다”며 “지난 1년간 총회장으로 헌신하며 행하여 온 모든 일들을 통해 성결교회가 다시금 한국교회 부흥의 중심에 서게 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위드 예수, 다시 성결의 복음으로 함께 그날을 기대하며 뛰어가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힘들더라도 함께 씨를 뿌려보자.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했다.
#부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