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단폭행을 당한 후 극도의 심리적 불안 및 우울감, 관련된 과감각, 회피 반응을 보여 약물 및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함에도 증상에 대한 불편감 및 일상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상당해 향후 적극적인 치료 유지를 요한다.'
올해 30살이 된 이모씨가 지난해 10월 받은 정신과 진료 진단서다. 그는 아직도 15년 전의 괴로웠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 2008년 봄, 친구라 생각했던 한 동급생이 그를 근처 중학교로 불러냈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무차별 폭력이었다. 당시 십여명의 가해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발과 손으로 온몸을 구타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지만 두려움과 아픔에 도망은 생각하지 못했다. 구타는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는데, 가해자들에게 기분 나쁘게 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에도 그는 5년간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우울증 등을 토로하고 있다.
정순신(56·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임명 하루 만에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서 사퇴한 가운데 학폭 문제에 있어서는 사후처방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피해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는 만큼 피해자들은 끔찍했던 학교 폭력 피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가해자들에 대한 사후 처벌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얼마나 더 어린 학생들이 마음 아파하고, 상처받고, 소중한 목숨을 끊어야 학교폭력을 두려워하는 날이 올까"라며 "더 이상 학교 안에서 나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교폭력 피해자도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과거 따돌림, 학교폭력을 당했던 이유를 나에게서 찾을 때가 있다"며 "마치 낙인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사람은 '네가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식으로 피해자에게도 원인을 찾는다"라며 "하지만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렸고 한번 따돌림이 시작된 이후에는 나 스스로도 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 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학교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개입도 중요하지만, 주변 학생들이 폭력을 방관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교실 내에서부터 학폭에 민감한 환경을 조성하는 취지다.
스스로를 "학교 폭력 방관자"라고 밝힌 20대 김모씨는 "가해자 제재나 응징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방관자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폭력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관자들은 자신도 같은 피해를 입을까 걱정돼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며 "결국은 학교폭력 방관도 가해행위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계속 인식시키고 교육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부산 중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중인 조모(31)씨는 "초등학교에서는 특히 '멈춰!'라는 학폭 캠페인이 주효하다"며 "이렇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동급생이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할 때 나서서 도와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학교폭력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유혜진(60)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무엇이 괴롭힘인지, 그 영향은 어떤지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특히 가해 학생들과 그 부모에 대한 상담도 중요하다"며 "가해 학생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교육할 수 있을지 지속적 상담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