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2~3배에 진료비는 최저"… 소아과 전공의 멸종

소청과, 모든 진료과 중 최저… 대만 5분의1
서울 한 병원에서 사람들이 소아청소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의사 구인난은 장기적인 저출산 흐름과 고착화된 낮은 수가(진료비), 코로나19로 인한 진료량 급감이 맞물리면서 가속화됐다. 특히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효과가 미미한 출산 장려책에 치중하면서 어린이 의료 체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3 이하인 초저출산 현상이 2002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후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소청과는 직격탄을 맞았다. 어린이 환자 수가 줄면서 개원이 어려워졌고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원인이 됐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저출산 현상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소청과 의사들"이라면서 "돌 전후 아기들은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감소해 발열, 기침 등 각종 질환에 노출되고 예방접종도 많아 소청과를 가장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까다로워 의료 소송 리스크가 큰 반면 진료비는 낮은 것도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일은 고되고 힘든데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이유다.

서울의 A상급종합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는 "어릴수록 보채고 몸집도 작아서 경험이 없으면 진찰은 물론 채혈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면서 "자칫 채혈이나 진정 치료 중 사망 사고라도 발생하면 어린이는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손해배상금이 보통 10억 정도에 달한다"고 말했다.

최희정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소아 심장 전문의)는 "어린이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는 성인 대비 2~3배 이상인데 수가는 낮다"면서 "보통 어린이 입원 환자 1명은 성인 2~3명을 진료하는 것과 맞먹어 업무강도가 훨씬 센데 생활의 질은 낮아 전공의들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산병원은 상급종합병원이지만, 소아 심장 전문의는 1명이다. 어린이 진료의 특성상 다른 과 전문의는 검사나 치료결정을 할 수 없어 응급 심장질환자가 발생하면 365일 언제든지 병원에 나와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어린이 중환자 진료는 고난이도, 고강도, 고위험 업무여서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분야다. 소아 중환자 진료가 24시간 가능하려면 소아 중환자를 전담하는 5~7명의 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청과 전공의 지원 감소에 따른 전문의 부족, 근무여건 악화, 기존 전문의 이탈 등으로 소아 중환자 진료는 붕괴 상태다.

조중범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는 "(소아 중환자 의사 부족은)응급·중증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열악한 근무와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에너지 소진, 소송 위험,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면서 "그나마 소아중환자 전담의사가 있는 병원은 사정이 조금 낫지만, 이마저도 없는 경우 전문질환군 전문의가 중환자실 진료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이사)는 "소아암 환자들에게는 채혈이나 혈관주사 등 각종 시술이 어렵고 응급·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해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면서 "또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약 15%의 환자는 재발과 합병증으로 숨져 상실감을 느끼기 쉽고 의료 소송이라도 걸리면 견디기 쉽지 않다"고 했다.

만성화된 낮은 진료비도 소청과가 인력난에 시달리는 주요인 중 하나다. 소청과 진료비는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동네 병·의원)만 놓고 봐도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만7611원으로 전체 15개 진료과 중 가장 낮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표시과목별 요양급여비용을 살펴봐도 같은 해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 중 소청과 병·의원에 지급된 진료비는 총 5134억 원으로 가장 작다. 저출산 여파로 환자가 줄면서 오히려 10년 새 약 25% 감소했다.

임 회장은 "소청과 진료비는 30년 동안 거의 변한 것이 없다"면서 "진료비가 굉장히 낮은 것으로 알려진 대만과 비교해도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소아암 진료비도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다. 김 부교수는 "성인과 같은 항암치료를 위해 단기 입원하는 소아암 환자의 진료비 총액은 성인의 반값에 불과하다"면서 "소아암 환자들은 채혈, 정맥주사, 골수검사 등 각종 시술을 할 때 의료진이 동시에 여러 명이 따라 붙어야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술·시술, 검사가 아니여서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가 3년가량 지속되면서 전국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올해 상반기 15.9%로 급락했다. 낮은 수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량 진료로 버텨오다가 코로나19로 진료량마저 급감하면서 미래가 어둡다고 느낀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화됐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진료량이 40%가량 급감했다"면서 "노동 집약적인 필수 진료과에 대한 보상 지원 정책에 변화가 없고 중환자 진료에 따른 의료 소송과 의료진의 책임 전가 등으로 전공의 기피 현상이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도 소청과 의사 공급 '절벽'에 이르게 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정부는 16년 간 약 28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수는 10년 전 절반 수준인 25만 명 이하를 밑돌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0.78명)를 찍었다. 그 사이 소청과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심화됐다.

어린이 중환자를 돌보는 서울의 B 상급종합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어린이 응급 의료는 고사 직전인데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말 뿐 정작 재정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면서 "저출산 예산을 많이 지출하고도 실패한 정책 담당자들에게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응급전문센터 전담 전문의를 팀당 5명에서 6명으로 늘리고 재정도 1억 원을 늘린 6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와의 의사소통 문제로 진척이 없는 상태다.

김 부교수는 "소아암 완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아암은 '암 정책'에도, '소아청소년과 질환 정책'에도, '희귀질환 정책'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깍두기 신세"라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장려할 것이 아니라 아픈 아이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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