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잡지인 ‘활천’(活泉)이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살아 있는 샘’이라는 의미의 ‘활천’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기관지로 1922년 11월 25일 창간했다.
기성은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이 일어났고, 1920년 이후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발행됐다. 대부분 잡지와 신문은 창간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며 “그렇지만 ‘활천’은 지금까지 발간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활천’ 창간 당시 조선의 기독교는 모든 것을 선교사와 선교 단체에 의존했다고 한다. 하지만 ‘활천’은 조선인 교역자의 자체적인 생각과 의지, 모금으로 시작됐다고.
1920년 가을 어느 날, 성결교회 지도자 몇 명이 ‘활천’ 창간에 대해 논의하고 1921년 3월 교역자 간담회에서 이를 상의하기로 했다. 교역자 간담회는 “자금은 선교비로 취할 것이 아니라 조선인 남녀 교역자가 공심협력하여 1922년 3월까지 5백 원을 저축하기로 하다”라고 결의했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조선인 교역자, 남녀가 함께 협력해 자발적으로 ‘활천’을 창간하기로 한 것이다. ‘활천’ 창간을 결의한 후 1년 동안 창간을 위해 모금했다. 교역자들은 가난했지만, 힘을 모았고 계획한 대로 5백 원을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활천’은 창간됐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성은 “하지만 ‘활천’이 100년을 이어오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일본은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한국 기독교를 일본화하고자 했다”며 “‘활천’은 검열제로 인해 원고와 통신을 미리 보내야 했다”고 했다.
이어 “전쟁이 계속되며 ‘활천’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제는 매월 60여 면으로 출판하던 것을 30면으로, 다시 15면으로, 다시 반으로 축소하도록 강제했고, 전쟁과 황도를 선양하는 기사를 강요하다가 이를 거부하자 6개월간 정간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며 “결국, ‘활천’은 1941년 12월 1일 자로 폐간되고 말았다”고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활천’도 1946년 1월에 복간됐다. ‘활천’ 복간호는 한국 정치사상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았다. 해방 직후 남한에는 우익 3영수라고 불리는 지도자가 있었는데,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었다. 당시 남한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남부대회가 1945년 11월 28일에 정동교회에서 열렸고, 이 자리에서 우익 3영수 환영 예배가 있었던 것.
그들은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이 연설 내용은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 수록되지 않고 오직 ‘활천’에만 수록됐다. 기성은 “이는 해방 후 한국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간한 ‘활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고, 이는 ‘활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기성은 “인민군은 ‘활천’의 발행인 박현명, 주필 이건, 편집 주무 김유연을 납북했다”며 “‘활천’의 주요 운영진이 모두 납북되면서 ‘활천’은 약 3년 동안 휴간해야 했다”고 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활천’은 속간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교회는 신학적인 방향을 놓고 매우 중요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진보 진영인 세계교회협의회(WCC) 찬성파와 복음주의 진영인 그 반대파가 날카롭게 대립했고, 이는 한국교회 분열로 이어졌다. 대부분 교단이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성결교회도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됐다.
‘활천’ 역시 분열의 파도에 휩쓸려서 휴간해야 했으며, 기성과 예성 양쪽 모두 ‘활천’이라는 이름의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후 ‘활천’은 기성의 잡지로 한국교회의 흐름을 잘 반영했다. 19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했고, 성결교회의 성장에 따라 ‘활천’도 ‘활천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새롭게 운영됐다.
기성은 “이처럼 ‘활천’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고 했다. 현재 ‘활천’의 발행인이자 기성 총회장인 김주헌 목사는 “‘활천’은 성결교회의 ‘살아 있는 샘’이자 세상을 ‘살리는 샘’이었다”며 “앞으로도 ‘활천’은 한국 사회와 교회를 살리는 샘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활천사장 최준연 목사는 “‘활천’은 초심을 잃지 않고 그 정체성을 지키며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 문화적 갱신을 통해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활천’은 교회적으로는 복음주의 입장에서 목회자의 사역을 돕고 평신도의 건전한 신앙 성장을 도모하고, 사회적으로는 기후 위기와 인구 감소 등 사회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서 시대를 선도하는 기독교 언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고도 밝혔다.
한편, 기성은 ‘활천’ 창간 100주년을 맞아 ‘활천 100주년 기념예배’를 오는 3일 신길교회에서 드리기로 했으며, 오는 27일을 ‘활천 100주년 기념주일’로 지키기로 했다. 이외에도 ‘활천’ 100년사 발간과 ‘활천’ 100주년 영상 제작, ‘활천’ 수기 공모 등 다양한 100주년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