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사상 최초로 오리건주 상원 3선과 하원 재선을 한 임용근 전 오리건주 의원이 자서전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청소부에서 미국 오리건주 상·하원 5선까지」(가온미디어)를 펴냈다.
1935년 경기도 여주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 때인 1950년 북한의 6.25 남침 전쟁이 발발하고 9.28 서울 수복 후 소방서에 근무하던 부친이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하는 아픔을 당했다. 교회에는 아홉 살 때부터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는 폐결핵에 걸려 7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미군들의 구두를 닦기도 했다. 여주농고를 졸업하고 서울신학대교에 입학했다. 일반대학을 졸업해도 연좌제로 인해 사회생활이 제한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라고.
영어를 잘 했던 그는 여주에서 목회를 하던 중 미국의 컴패션 후원자들이 보내오는 편지와 학생들이 후원자들에게 보낼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한국 고아들로 구성된 중창단의 미국 순회공연에서 통역과 설교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1966년, 그의 나이 서른 한 살에 도미하게 된다.
미국에서 그는 청소, 정원 가꾸기, 세탁소 일, 페인트 작업 등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부동산 소개업과 투자, 비타민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는 50세 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오리건주 한인회장과 미주총연 회장, 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임 전 의원은 미국에 있는 700여만 명의 아시아계 미국 시민권자들을 대표하는 아시안시민권자협의회(AAVC)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그리고 1990년 3월, 55세의 나이에 오리건주 주지사 선거에 도전, 비록 낙선했지만 공화당 후보 7명 중 2위를 차지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후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임기 4년의 상원의원을 3번 한 그는 하원의원 선거에도 나가 재선했다. 미주 한인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임 전 의원은 최근 한 간증집회에서 “예수님이 건축자들에게 버려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며 “저도 버려진 돌이었다”고 했다.
그는 “큰 산 밑에는 큰 계곡이 있다”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큰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버려진 돌 같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 이제는 버려진 돌이 아니라 모퉁잇돌처럼 쓰임받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