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 앤 바우스는 기독교인 작가이자 블로거이며 학대, 불안, 우울증, 강박장애의 경험을 딛고 젊은 엄마들의 멘토로 헌신하고 있다. 다음의 칼럼의 요약.
1.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성경은 죄가 세상에 들어올 때 모든 자연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죽음은 현생에서 약속된 요소이며, 쉽게 말해서 나쁜 일들이 생겨난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날씨가 항상 완벽했다. 계절의 변화나, 비나 눈 폭풍, 지진, 토네이도 또는 쓰나미도 없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죄 때문에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망가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연재해가 일어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로마서 8장 19~22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재해가 현세에서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재앙은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연재해를 일으키시는지, 아니면 내버려 두시는지 논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도출 가능한 유일한 결론은 자연계는 하나님의 섭리 밖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분명 이집트에 전염병을 내리셨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셨다. 요나서를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바다에 폭풍을 일으키셨음을 본다.
욥기 37장 6절은 “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고 말씀한다. 시편 147편에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8절),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16절)”를 생각해 보라. 아모스 4장에서 하나님은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7절)”라고 말씀했다. 마가복음 4장 39절은 예수님에 대해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전했다.
이러한 성구를 통해 날씨가 얼마나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손길에 의한 것인지를 주목하라. 이는 하나님을 경솔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분처럼 보이게 하므로 많은 이들을 두렵게 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 번째 사실을 알려 준다.
3.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선하시다” 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와 같은 구절에 집중할 때 하나님을 믿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한 시편 115장 3절과 이사야 45장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와 같은 구절에 비추어 볼 때, 자연재해에 직면한 이들에게 힘든 말이다.
우리는 세상과 그 자연재해를 보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두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사야 55장 8-9절을 기억하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자연 만물과 마찬가지로, 망가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 잠언 3장 5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상기시킨다. 우리가 만일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면, 과연 누구를 믿겠는가?
4. 아직 기쁨은 남아있다.
많은 이들에게 자연재해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질적인 소유를 잃은 것 이상을 뜻한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에서 참상을 마주하며 기쁨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고통 앞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난과 기쁨이 함께 한다.
베드로는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베드로전서 1:6).”라고 말했다. 바울도 그 좋은 예이다. 그는 토네이도, 허리케인 또는 지진에 직면하지 않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시련의 목록은 매우 방대하다. 시련 끝에 그의 말을 주목하라. ”슬프지만 항상 기뻐하라.”
자연재해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진리를 상기시킨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나약하며, 죽음은 확실하다. 슬프게도 우리 가운데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위기 속에서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리거, 서로 격려하며, 잃어버린 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리킨다.
5. 더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마태복음 24장 5~8절을 읽어 보면, 우리가 지금 직면한 재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나쁜 일들이 닥칠 것이며,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 구절은 위의 모든 요점을 요약한다. 우리는 망가진 세상에 살고 있기에 해산의 고통이 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이러한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므로 놀라지 말라고 하실만한 믿을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위기에 맞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현생에서 아직 더 나쁜 일들은 오지 않았지만 천국은 지평선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25장 8~9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