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3일 감사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서면 조사를 요구한 것을 놓고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범국민적 저항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이라고 성역은 있을 수 없다"며 압박했다.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 조사 통보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 발언이 전해지면서 여야 공방은 격화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감사원의 서면 조사에 대한 관련 보고를 문 전 대통령에게 전했고, 문 전 대통령은 “대단히 무례하다”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달 28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문전 대통령 측에 서면 조사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즉각 구두로 수령 거부 의사를 전했고 비서실과 참모들이 논의해 감사원의 질문서가 담긴 이메일을 반송했다고 한다.
이에 국민의힘은 감사원의 과거 사례를 근거로 '성역 없는 감사'를 강조하며 문 전 대통령이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감사원 조사를) 거부하고 말고는 문 전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역대 대통령에게 감사원의 서면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감사원의 서면조사에 대해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응했고 다른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감사원이 서면조사를 요청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며 "그에 대해 이렇게 분을 내고 정치탄압이라고 몰아붙이며 감사원을 고발하겠다고까지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민주당이 문 전 대통령 방탄을 위해 과도하게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1993년 노태우 전 대통령,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질문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았다.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질문서를 전달했으나 두 사람은 수령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진석 위원장은 또 "무례하다는 표현을 쓰면서 불쾌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럴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겸허한 마음으로 그냥 응대해 주시는 게 옳지 않겠나"라며 문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준엄한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법, 감사의 영역에서 성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께 사실관계를 답하는 것은 의무이자, 도리"라며 "날 선 민주당의 반응은 또 다른 정치공세로 민생을 방기한 또 다른 민주당식 정치전쟁의 전선 확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는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고 했다"면서 "사건 관련자의 수사기관 조사로 본인을 향해 점점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범죄리스크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감정이입의 전형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차기 당권주자들도 문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김기현 의원은 "불쾌해서 서면조사도 받지 못하겠다는 문 전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더 키울 뿐"이라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조사에 응하면 되는 문제다. 불쾌감을 표시하며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압박했다.
권성동 의원도 "적폐청산 구호를 외치며 전임 정부 털어댔던 과거는 유쾌한 일이고 자신이 조사받아야 하는 현재는 불쾌하단 말인가"라며 "전직 대통령은 초법적 존재가 아니다. 법과 절차에 ‘불쾌’ 따위를 논하며 비협조적으로 일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헌정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가세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강력 반발하며 최재해 감사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 전 대통령 조사 시도를 비롯한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할 방침도 세웠다. 피케팅 항의 등 당 차원의 대응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전날 "믿기 힘든 보도를 접했다.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며 "권력남용 끝에는 언제나 냉혹한 국민의 심판이 기다렸던 역사를 기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민이 맡긴 권력으로 민생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야당을 탄압하고 전 정부에 정치보복을 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지금은 야당 탄압, 전 정부 정치보복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민생경제 그리고 외교평화에 힘을 쏟을 때다. 좀 국민 앞에 겸허해지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은 그동안 검찰과 함께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감사와 수사를 벌여왔다"면서 "관련된 사건만 수십 가지이고 조사받는 인원은 수백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대책위는 "감사의 방법도 특수부 검찰수사를 방불케 하며 말이 특정감사이지 문재인 정부 모든 사안에 대한 포괄적 감사"라며 "감사원이 감사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 칼끝을 전임 대통령에게 겨눔으로써 우리 사회를 정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겠다는 심산"이라며 "정권의 안위를 위해선 국민의 삶 따위는 얼마든지 내팽개치겠다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 입장을 전한 윤건영 의원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등에서 근무한 의원 17명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감사원 조사,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권력을 위해 쓰겠다는 선전포고"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수사기관도 아닌 감사원이 대체 무슨 권한으로 이미 공직에서 물러난 전임 대통령을 조사한다는 것인가"라며 "문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박지원 전 원장과 서훈 전 안보실장에게도 출석을 요구했다 한다. 감사원법까지 들먹이면서 처벌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니 더 기가 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동일 사건에 대해 수사 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이 이중으로 조사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전임 정부 괴롭히기' 총동원 작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감사원이 다른 권력기관의 '흑역사'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사원 스스로 이성을 되찾고 차분히 되짚어 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