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자유' 뺀 역사 교육과정… "좌편향적" vs "갈등조장"

중·고 역사 교육과정 시안 개선의견 100개 넘어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최근 공개한 새 교육과정 시안 중 우리 나라 현대사를 다루는 대목에 '남침'과 '자유 민주주의' 등의 표현이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는 '남침·자유' 빠진 시안을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새롭게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을 마련해야 할 것"(박모씨)

"자유, 남침이라는 단어만으로 단편적으로 교육과정 개발을 폄하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모씨)

역사과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되풀이됐던 근현대사 이념 논쟁이 올 해 연말 고시를 앞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3일 교육부가 개정 교육과정 관련 의견 수렴 중인 '국민참여소통채널'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고등학교 한국사 공통 교육과정 시안'과 '중학교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에 달린 의견은 100개를 돌파했다. 같은 시간 중·고 국영수 시안 6개에 달린 의견이 총 13개였던 것과 달리 관심이 뜨겁다.

이 중 대부분이 지난달 31일 공개된 고등학교 한국사Ⅱ 및 중학교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 시안 속 '남침·자유' 용어가 사라진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앞선 박모씨 외에도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6·25 전쟁은 남침으로 교육하길 바랍니다"(이모씨), "반드시 가르쳐져야 하는 내용이 왜 빠졌나. 한쪽으로 편향된 의도가 드러난다. 즉각 시정해달라"(방모씨) 등 다수가 이 점을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8 개정 교육과정에 담겨 있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자유 민주주의'란 표현이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6·25 전쟁',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6·25 전쟁의 원인이 북한에 있음을 강조하는 '남침'이라는 표현과 공산주의에 대립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부각하기 위한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이전까지 없다가 박근혜 정부가 개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2018 개정 교육과정도 이를 이어받았다.

교과서에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수립(건국)' 중 무엇으로 표기할지도 매번 반복되는 논쟁 중 하나다. 전자는 백범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1919년 임시정부를 세울 때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시작됐으며, 1948년은 정부 수립일로 보는 입장이다. 반면 후자는 국제사회 승인을 받고 국가의 3요소인 국민·주권·영토를 갖춘 채 대한민국이 출범한 1948년이 국가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전까지는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표현이 유지되다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뀌었으며, 문재인 정부가 개발한 2018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다시 전환됐다.

이 같은 '남침·자유·정부' 등 용어가 빠진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놓고 현장 역사교사끼리도 의견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대구의 한 역사교사 박모씨는 '해당 시안이 그대로 교과서에 적용되면 실제로 학생들이 편향된 역사관을 배울 수도 있다고 보는가'란 질문에 "그렇다"며 "공산주의에 대적해온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엄연한 사실인 '남침'을 굳이 빼는 것은 가치 중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반면 박래훈 역사교사모임 대표는 "좌편향이라는 말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며 "북한이 침략했다는 맥락이 (교과서에) 다 들어가 있는데 특정 용어를 썼느냐 안 썼느냐 문제삼는 것이 오히려 (특정 사상을) 강요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소통채널에서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위해 특정 단어를 통해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상한 행위를 제발 자중해달라"(이모씨), "남침, 자유 민주주의 이 요소가 구태여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김모씨) 등 의견이 소수지만 표출되고 있었다.

박 대표는 교육 당국에 "교육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해 굉장히 논란이 많이 된다"며 "교육과정 시안은 개발 과정에 현장교사들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자를 비롯해 수많은 의견이 모아져 개발된 것인데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향후 의견수렴을 거쳐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보완하겠다고 해명했다.

당시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미래세대의 균형있는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헌법정신에 입각한 역사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현재 공개된 안은 초안으로 확정안이 아니며 연구진과 협의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참여소통채널은 오는 13일까지 운영되며, 전문가간담회와 공청회도 이달 중 추진될 예정이다. 의견수렴을 마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교육부가 연내 확정·고시하게 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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