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능력은 복음 속에 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변화(구원)는 개인의 인격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사회적으로도 일어납니다… 민족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전인적입니다.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고 가정을 변화시키는 데 멈추지 않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故 ‘유성’ 김준곤 목사가 생전 자신의 책에 기록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김성영 박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전 회장, 조직신학)는 “유성의 민족복음화운동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아울러 병행한 입체적 구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가 29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준곤 목사 선양 학술심포지엄’을 개최, 고인이 생전 펼쳤던 ‘민족복음화운동’을 재조명했다. CCC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모두 김준곤 목사가 생전 설립한 단체들이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김 박사는 “유성은 구원받은 개인이 전도를 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는 차원에서 이런 탄식을 한 적이 있다”며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기독교인들은 행동이 적다. 말이 많은 데 비해 생산이 없다. 내가 만나는 존경스러운 분들 중에는 전도의 일선 노동자가 아닌 분이 많다. 오늘날 우리 기독인들은 어찌하여 이 민족을 세계 민족사상 최초로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꿈이 없는가?”
이에 대해 김 박사는 “개인구원에 만족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되며 민족을 그리스에게 인도하는 사회구원에 힘써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그러면, 유성이 의도한 사회구원이란 어떤 개념인가? 구원 받은 국민들이 많아져서 기독교인이 양적으로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는 의미일까? 물론 이러한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그러나 유성이 꿈꾼 사회구원은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고 하겠다. 즉 복음으로 사회 전반이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유성은 동전의 양면 같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불가분의 관계와 역동성을 조화 있게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마침내 한국교회는 보수, 진보를 망라하여 이 거룩한 민족복음화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던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교회 일각에서 생전에 유성이 선도한 민족복음화운동이 양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에 너무 치우치지 않느냐고 비판한 것은 유성이 추구한 민족복음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김 박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가 개별교회 중심으로 부흥과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밖에서는 빌리 그래함 전도자를 이 땅에 보내어 ‘1973 서울집회’를, 안에서는 김준곤 목사를 비롯한 뜻 있는 교계 지도자들을 동원하여 ‘1974 엑스플로’를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성령의 불을 이 땅에 던지셨다”며 “이로 인해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음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유성 김준곤 목사의 땀과 눈물의 헌신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 “그가 믿고 꿈꾸고 추진했던 민족복음화운동은 ‘전 복음’”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섬 김 박사 외에도 김철해 박사(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와 정경호 박사(총신대학교대학원 선교신학 Ph.D.)가 각각 ‘유성 김준곤의 민족복음화운동 신학의 민족사적 의미: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서의 유성의 민족복음화운동’ ‘김준곤 목사의 신학세계로 본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특히 김철해 박사는 “그(김준곤 목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 성취와 그 과정의 한복판에 들어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그 민족의 복음화였다”며 “유성이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전도자로서 소명을 받은 이래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민족복음화운동 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유성 김준곤 목사는 민족복음화를 단순히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유성이 믿고 꿈꾸고 추진했던 민족복음화운동은 ‘전 복음’(Whole Gospel)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가난한 나라도 경제는 물론 모든 분야에서 일등 국가가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포함하는 나라”라고 했다.
◆ “교회는 민족이 되고 민족은 교회가 되는 것”
이어 정경호 박사는 “유성이 성장하면서 체득한 신앙과 신학은 민족에서 출발하여 민족을 교회로 만들고 그 교회가 전략적으로 캠퍼스를 복음화하고 캠퍼스에서 훈련된 순장이 평생순장으로 사역하여 민족을 복음화하고 훈련된 민족이 세계복음화를 이룩함으로써 주님의 지상명령성취를 돕는 것”이라고 했다.
정 박사는 “유성의 민족복음화 개념은 민족과 교회를 분리해두고 교회라는 틀을 만들어서 그 틀 안에 민족을 수용하는 구조가 아니”라며 “민족이라는 틀 자체를 총체적인 복음으로 변화시켜 교회로 만드는 것이다. 즉 교회는 민족이 되고 민족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본격 발제 순서에 앞서서는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의 사회로 개회식이 진행돼,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가 인사말을 전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영상)을 비롯해 김상복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와 류영모 목사(한교총 대표회장, 영상) 등이 격려사 및 축사를 전했다.
박성민 목사는 인사말에서 “오늘 심포지엄을 통해 세계적인 대학생운동가이자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운동의 지도자이셨던 김준곤 목사님의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 사랑, 인류애를 더욱 선양하고 구현해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상복 목사는 격려사를 통해 “김준곤 목사님은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고 한국교회를 목회하신 목회자이셨다. 만일 한 지역교회만 목회하셨던라면 세계 제일의 한국CCC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 많은 대학생들이 신앙의 힘으로 한국사회의 기둥들이 되어 이 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故 김준곤 목사(1925~2009)는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각각 창설했고, 1969년 전군신자화운동과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이끌었다. 민족복음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1974년 ‘엑스플로 74’ 대회를 주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