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일명 검수완박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법무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 수사권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상식과 법적으로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날 공개한 개정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사법질서 저해 범죄와 개별 법률이 검사에게 고발·수사 의뢰하도록 한 범죄는 검찰청법상 '중요범죄'로 묶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검찰이 계속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 4월 개정법 심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가 가능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를 부패·경제 범죄 '중'에서 '등'으로 바꾸면서 이에 대한 확대 해석이 가능해진 것에 따른 조치다.
한 장관은 이날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그런(법 무력화) 비판은 법률의 위반 범위를 넘어섰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라며 "법률의 규정 형식을 보면, 대통령령으로 위임한다는 것은 행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행정을 하며 탄력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률대로 하는 것을 시행령으로 법안을 무력화한다는 것은 상식과 법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무고·위증죄와 같이 국가질서를 위협하는 범죄의 경우에도 검찰 수사 범위에 해당된다고 봤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무고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검찰 수사가 가로막힌 현행법상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 역시도 중요범죄의 유형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이 근거로 검찰은 2018년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 당시에도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에 무고 등이 포함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 원 사건의 결정과 함께 혐의 유무 판단이 가능한 무고죄의 성격상 통상적으로 검찰에서 인지수사를 해왔고,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가 막히며 전체적인 무고 수사에 공백이 초래됐다고도 지적했다.
한 장관은 "무고죄는 본질적으로 죄가 안되는 사안을 허위로 고소한 것"이라며 "국가가 허위고소를 수사하지 않는 것은 무고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검찰은 개별 법률에서 국가기관이 검찰에 고발·수사를 의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경우 역시 중요범죄에 포함된다고 봤다.
예를 들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서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이를 검찰총장에게 고발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이 경우 검사를 고발 대상 기관으로 한정한 법률의 취지를 살리고 검사의 수사 의무를 보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한 장관은 이와 관련해 "개정 검찰청법이 다른 특별법들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했다.
법무부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 규정 시행 규칙상 신분·금액으로 경제범죄를 규정하는 내용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현행 시행규칙 상 뇌물죄의 경우 대상이 4급 이상 공무원인 경우에 한해 수사가 가능하다. 또 금액의 경우 3000만원 이상의 뇌물, 5억원 이상 사기·횡령·배임일 경우 수사가 가능한데, 이 같은 기준을 두고 경제 범죄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현행 제도상에서 검사가 5000만원짜리 사건으로 생각해 수사했는데 500만원인 경우는 어떻게 하나"라며 "상식적으로 기소해야 하지만 형행 규칙은 사건을 이송해야 한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당사자들에게도 소모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규칙은 법기술적으로도 맞지 않고 있어야 할 필요성도 없다"며 "법무부령을 아예 폐지하고 시행령에서 일원적으로 규정해 더 심플한 구조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장관은 "대통령령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되는 것"이라며 "법무부령은 제가 그냥 바꾸면 되는 건데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방위사업 범죄 역시 경제분야에서 기술유출 등으로 초래한 범죄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방위산업기술보호법 등을 경제범죄로 규정하는 등 검찰수사 배제 범위에서 제외했다.
마약류 관련 범죄의 경우 현행 시행령상 '마약류 수출입 또는 수출입 목적의 소지·소유 범죄'로 제한하고 있는데, 단순 소지나 투약 등과 달리 마약류 유통의 경우 경제 범죄의 성격을 띠는 만큼 경제범죄로 규정하도록 했다.
한 장관은 "국민생활의 안전을 위협하고 서민의 민생을 침해하는 조폭 등 깡패를 말하는 것"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서민을 갈취하는 기업형 조폭 보이스피싱 조직 등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한 조직 범죄를 경제범죄로 규정했다. 마약밀매와 조폭을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면 안되는 공익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