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삼 목사(충현교회 담임)가 10일 주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이사야 43:16-21)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 목사는 “이사야서는 장엄한 책이자 세심하고 심오한 책이다. 신학자들은 구약이지만 복음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말한다”며 “이사야서는 심판과 신원이라는 두 주제가 롤러코스터처럼 반복해서 나타난다. 신원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구원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어 “이사야서 43장은 바로 신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회복, 복음, 예수님의 예표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오늘 본문의 주제도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도전하고 있다”며 “19절에선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나온다. 하나님의 신원의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새일을 행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에 대한 기대가 꺽인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대감을 갖길 바란다”며 “불안, 두려움 등이 닥쳐오면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려고 이전에 행했던 확실한 방법을 붙들 것이다. 즉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에 익숙한 것”이라고 했다.
한규삼 목사는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이사야서는 새로운 지혜를 준다. 바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집중하고 바라보라는 것”이라며 “어떤 사람에겐 새 일은 과거에나 일어났고, 현재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했다.
그는 “이 본문을 갖고 설교한 교훈은 보통 신년 감사예배 때나 가끔씩 듣는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이 말씀을 행하신다. 그러니 담대한 신앙을 갖자”며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하나님이 나에게도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대하며 붙드는 사람이다. 이 신앙이 담대한 신앙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바라봤는가. 18절에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사야서 46장 9절에선 ‘하나님이 행하신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나온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과거의 역사를 지금도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균형잡힌 신앙”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사야서는 과거의 사건을 너무 기억해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본문 16-17절은 홍해 사건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추격하는 적진을 뒤로 하고 목전엔 홍해를 둔 위기에서 하나님이 구출하신 사건이 바로 홍해 사건”이라며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 과거에 얽매인다면 그 일 위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할 것으로 말씀하셨다. 즉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지금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로 이어져야 유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충현교회는 교회 예배당 1·2·3층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복도까지 신자들이 앉아 예배를 드렸던 일화가 회자된다. 그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고 했다.
한 목사는 “우리의 문제는 기대감을 상실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 일은 무엇인가. 이사야가 목격하는 새 일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이 구출당한 뒤 광야에서 길과 물을 내신 하나님으로 인해 인간뿐만 아닌, 승냥이와 타조 등 가축들이 쉼을 얻으리라는 것”이라며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기 사건보다 100년 전 이 글을 쓰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고 쓰신 것이다. 우리는 과거 홍해에서 구원받은 일만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은 미래에 새 일을 반드시 행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프레밍 그대로 우리에게 임할 것을 믿자. 새 일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가져야 살아있는 신앙이 될 것”이라며 “옛 일이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자. 하나님은 없는 것 같은 길을 뚫어서라도 새 길을 내신다. 이는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시는 역사와도 같다”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왜 우리는 새 일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할까. 새 일에 대한 기대는 접은 채 포기하는 신앙을 할까. 이사야서 전체를 보면 단서는 명확하다”라며 “이사야서의 주제는 심판과 신원으로, 구원·회복·보상을 포함하는 신원에 앞서 언제나 탄식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탄식은 회개와 다르다. 탄식은 죄에 억눌린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의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라며 “이처럼 우리 가운데도 깊은 탄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한 목사는 “탄식은 성경에서 죄가 생겨나면서부터 일어났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죄부터 탄식이 벌어졌다. 창세기 4장 10절의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에서 호소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탄식’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7장 34절의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백성의 탄식 소리를 듣고 출애굽 사건을 행하셨다”며 “이처럼 하나님은 백성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서야 새 일을 행하신다. 이와 같이 나, 교회, 세상 등이 망가진 모습을 보면서 탄식이 늘어날 때 하나님의 행하실 새 일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탄식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무기력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바로 탄식이다”라고 했다.
한 목사는 “그럴 때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라며 “미국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탄식에 대해 ‘미래 없는 탄식을 경계하라’고 했다. 탄식만 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은 죽음이자 사망”이라고 했다.
그는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것은 놀라운 전환이다. 하지만 이 시대가 또 조심해야 할 것은 탄식 없이도 좋은 일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탄식 뒤에 목도할 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찬양할 수 있다. 탄식 없이 새 일이 일어났다면 이는 내가 한 일처럼 오해할 수 있찌만, 탄식을 내뱉고 일어나는 새 일에 대해선 ‘하나님만이 내 왕입니다’라며 과연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한 목사는 “새 일은 내게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하나님은 새 일을 반드시 행하신다. 이러한 새 일의 특징은 바로 새 길을 내는 것”이라며 “이처럼 이 시대 우리에게 난 길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다. 예수님의 진리를 붙들 때 이로부터 새 일과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