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7일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정책으로 재정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지적하며 고강도 지출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그러면서도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 및 인재 양성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는 과감하게 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충청북도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새 정부 5년의 재정운용 방향과 재정개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여당 주요 관계자들과 더불어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 민간 기업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탄탄했던 재정이 국가신인도에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받을 그럴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 지난 5년간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돼 2017년 60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금년 말이면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증가 규모와 속도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이러한 재정 여건 속에서 우리 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의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민생 현안과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공공부문 자산을 전수조사해서 기관의 기능과 연관성이 낮은 자산부터 적정 수준으로 매각 처분해야 한다. 공무원의 정원과 보수도 엄격한 기준으로 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이 나아질 거라는, 그런 재정만능주의라는 환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재정이 민간과 시장의 영역을 침범하고 성장을 제약하지 않았는지, 구축효과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면밀하게 살펴볼 때가 됐다"며 "성역 없는 고강도 지출구조조정으로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자산 중 컨벤션시설과 홍보관, 유휴부지 등 자산의 매각이 추진될 전망이다. 골프장·콘도 회원권 등 과도한 복리후생용 자산도 처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유휴 공공청사 등 국유재산에 청년 창업공간을 조성하는 방안 등도 추진된다. 민간투자사업 대상시설도 도로와 철도를 중심으로 다양화한다.
코로나 한시지출을 정상화하고, 보조사업을 정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관행적으로 지속됐던 민간 보조사업도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2022년 총 1205개 사업 중 440개 사업을 점검, 61개 사업을 폐지하고, 191개 사업 감축을 추진한다. 일자리 정책도 재정지원 일자리 창출과 고용보조금 지원 중심에서 벗어난다. 지자체 사업, 코로나 한시사업 등 11개를 폐지한다. 취업률 등 성과가 저조한 사업은 감액한다.
윤 대통령은 이와 같은 조치를 통해 절약한 재원을 취약계층 보호와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 사업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절약한 재원은 꼭 필요한 데 써야 한다"며 "진정한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어려운 경제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을 긴축해서 조성된 자금으로 이들을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초격차 전략기술의 육성, 미래산업 핵심 인재 양성과 같이 국가의 미래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사업에는 과감하게 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병사봉급 인상 등 국민께 약속한 국정과제는 절약한 재원으로 차질 없이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재정준칙의 조속한 마련을 주문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초중등 학생 수가 감소하는 교육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지방대학을 포함한 대학 교육에도 충분히 돈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초중등 교육과 고등교육 사이의 재정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은 미래 핵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충분히 소통해 초당적 협력을 이뤄낼 수 있도록 대통령실과 정부 각 부처가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회의에서는 '바로 서는 나라재정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새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분야별 재정지원 방안, 재정수지·국가채무 등 중장기 재정건전성 관리 방안,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재정개혁 과제 등이 논의됐다. 재정운용 방향과 재정 개혁 과제, 성장 동력 재가동을 위한 정책 과제, 인재양성과 문화 융성을 위한 지원 방안, 성장-복지 선순환을 위한 일자리정책 패러다임 전환 및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복지 추진 방안 등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토론을 지켜본 후 "과거 대공황 시기에는 정부가 적자 재정을 편성하는 과감한 재정 투자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모색했으나, 현재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현 상황에서는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가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또한 재정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건전 재정을 위해 모든 부처가 합리적 방안을 고민하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회의를 지방대에서 주재한 것은 지방발전, 지역인재 육성 등에 관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회의 참석을 계기로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일자리, 지역인재육성 등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에서 "기업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대학 교육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중견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했던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학창시절에 산업체 견학, 인턴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간 국무위원들을 중심으로 열렸던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민간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한다"며 "민간의 고민을 정부가 잘 받아안고 국가재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입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를 토론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모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논의된 정책과제는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2022~2026 국가재정 운영계획 수립 시 반영될 예정이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