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장들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백운규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 신용무 영장담당 부장판사는 15일 백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범죄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뤄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피의자(백 전 장관)가 현재 별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점이나 지위, 태도 등에 비춰 도망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백 전 장관은 현재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부당개입 혐의로도 기소돼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피의자가 다른 피의자나 참고인을 회유해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게 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고 수사기관에 상당한 양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는 등 추가로 증거인멸을 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가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피의자가 구속된다면 방어권 행사에 심대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검사 최형원)는 지난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백 전 장관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14시간 가량 진행됐던 첫 소환조사를 마친 지 나흘 만이다.
백 전 장관은 산업부 장관 재직 시절 13개 산하기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혐의 등을 받는다. A기관의 후임기관장 임명 관련해 부당지원을 한 혐의, B기관이 후임기관장 임명 전 시행한 내부인사에 대해 취소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A기관은 한국난방지역공사로 알려졌는데 백 전 장관이 한명숙 전 총리 시절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수석을 지낸 황창화씨를 사장에 임명하기 위해 면접 예상 질의서와 답변서 등을 미리 건네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백 전 장관은 이날 심사에 출석하며 "황씨에게 질문지를 전달한 적이 있나"고 묻는 취재진 질문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사퇴 종용 혐의를 부인하는지 묻는 질문엔 "장관 재임시 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서 이뤄지게 됐다"고 짧게 답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조만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한편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지 여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의원이 행정관 시절 산업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장들의 사퇴 종용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의정활동에 충실하면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백 전 장관은 영장이 기각된 후 구치소에서 나오면서는 "현명한 판결을 해주신 재판장께 감사하다"며 "앞으로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를 인정하느냐', '검찰의 수사가 과도하다고 생각하느냐', '검찰이 박 의원을 수사 선상에 올린 데 대한 입장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지난 2019년 1월 백 전 장관, 이인호 전 산업부 제1차관 등 5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하면서 제기됐다. 이들은 당시 "산업부 박모 국장이 아직 임기를 끝마치지 않은 발전소 4곳 사장 등에게 사퇴를 종용해 일괄 사표를 내게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고발장 접수받은 지 3년 만에 산업부 산하기관 등을 압수수색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지난달에는 백 전 장관의 자택·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이메일 등 자료를 확보했다. 이후 백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이를 법원이 기각하면서 향후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