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위기보다 빠르다… 또 무역수지 적자 ‘경고등’

우크라이나 사태발 국제 유가 급등 등 원인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를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던 모습.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한국의 지난달 수출액이 월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지만, 또 다시 무역수지 적자에 빠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같은 추세라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적자를 넘어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5월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615억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1.3% 늘었다. 19개월 연속 증가세이자 역대 5월 중 최고 실적이다. 기존 최고 실적은 지난해 5월 507억 달러였다.

다만 지난달 수입액은 1년 전보다 32% 늘어난 632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입액이 수출액을 넘어서면서 무역수지도 17억1000만 달러 적자로, 두 달째 적자 기록을 이어갔다.
지금과 같은 적자 추세가 이어진다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14년 만에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누적 적자 속도 역시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 국제수지동향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경제위기 당시 1~5월 무역수지는 누적 63억4000만 달러 적자였지만, 올해(1~5월) 벌써 78억5000만 달러로 이를 넘어섰다. 100억 달러도 조만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연간 기준으로도 14년 만에 역대 최대 수준의 무역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이 2000년 이후 연간 무역적자를 낸 것 역시 2008년(133억 달러)이 마지막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 자료에서 한국의 무역수지가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져 올해 158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올해 연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저탄소 에너지 수요가 늘어 천연가스 수입이 늘어나는 등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과 같이 중간재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고유가 기조 속에서 무역수지가 크게 악화된다. 유가가 뛰면 원자재 가격이 높아져 수입 단가도 오르기 때문이다.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5월 가격은 108.2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3%가 올랐다. 같은 기간 원유 수입액도 88억78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5%가 뛰어올랐다.

원유를 제외한 주요 에너지 자원도 추세는 비슷하다. 석유 제품은 22억79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36%가 올랐으며, 가스는 30억9900만 달러로 74.1%, 석탄은 27억7600만 달러로 233.1%가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급등하고 있는 국제 곡물 격도 한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5월1일~25일 농림수산물 수입액은 37억1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7%가 증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액이 수입 증가세를 주도하며 무역적자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며 "최근 무역적자는 우리와 같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이탈리아·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회복 전망은 어두워 보인다. 무역수지 부진, 대외 여건 불확실성 등으로 한국은행(2.7%), 한국개발연구원(2.8%), 산업연구원(2.6%), 국제통화기금(IMF·2.5%) 등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 미만으로 전망했다.

수출 경기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수출을 이끄는 '효자 품목'인 반도체의 올 상반기 수출액 증가율 전망치를 19.5%로 내다봤지만, 하반기 예상치의 경우 3.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무역갈등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 교역환경 악화 속에서 수출 호조 속 저성장 기조가 재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최근 수출 호조의 배경과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4월 수출은 잠정치 기준으로 통관 수출 금액(경상 달러 기준)은 12% 이상 증가했지만, 수출 물량은 0.4% 감소했다. 실질 수출의 증가가 아니라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따른 수출가격 상승이 수출 호조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많을 경우, 세계경제는 1970~8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면서 "우리 수출도 당시보다 더 심각한 부진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수출 호조와 달리, 앞으로의 교역 환경 전망은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 모두 그다지 밝지 않다"며 "향후 교역 여건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경계하고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수출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업계·관계부처와 논의하며 투자 활성화와 규제 개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를 주도하고 산업 공급망을 강화·안정시킬 수 있는 신통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우리 경제의 주된 성장 엔진인 무역이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업이 직면한 금융·물류 상황을 분석하고 업종별 특화 지원 등 수출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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