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협상 진전?… 美·유럽 우려는 커져

美 "러, 군 철수부터"…유럽, 러 외교관 추방 잇따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가운데) 29일(현지시간) 오전 10시께 터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열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5차 협상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은 키릴로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부실장 텔레그램 갈무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9일(현지시간) 5차 협상을 진행한 후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이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며 우려를 앞세웠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은 이날 양국 대표단 기자회견 내용을 통해 양측 협상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대표단의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실 고문은 이날 건설적 협상을 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접경지인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강조해왔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자국의 안보가 보장될 경우 중립국 지위 채택 및 비핵화를 추진하고 외국군 배치 금지 등을 제안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핵심 요구였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대표단에 따르면 양국은 향후 15년 동안 크름반도와 세바스토폴 영토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이를 위한 협상을 추진한다는 내용과 함께 이 기간 군사적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논의됐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안전 보장 협정에 대한 서명은 휴전과 러시아의 병력 철수 완료 후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안전 보장 협정을 보증하는 국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터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폴란드, 이스라엘 등을 거론했다. 또 이들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접근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협상 내용이 국민투표를 거친 뒤 보증국과 우크라이나 의회 비준을 거쳐야 현실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협상을 중재한 터키의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 시작 이래 가장 의미있는 진전을 이뤘다"며 "의견일치와 공통의 이해에 도달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백악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축소하겠다는 발표에 대해 "누구도 러시아의 발표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키이우를 둘러싼 모든 움직임이 철수가 아닌 재배치라고 믿는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들(러시아)의 행동이 어떤지 보기 전까지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협상 결과를 실질적 진전과 거리를 뒀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4개국 외교·외무장관과의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말하는 것이 있고, 러시아가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군사 활동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선 "러시아가 키이우 주변의 적대감을 줄일 것이라고 말하는 건 러시아가 다시 한번 사람들을 속이고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지역을 정복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지금 당장 침략을 중단하고, 사격을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시키고 회담에 참여하라"고 했다.

실제 러시아는 이날 5차 협상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격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남서부 미콜라이브 정부 건물이 러시아 포격에 의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건물 절반이 무너졌으며 최소 12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

CNN취재팀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이르핀 시(市)에서 5㎞가량 떨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주택가에서 빈번한 대포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여러 로켓 포격 소리도 산발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도심에서도 공습 사이렌과 대포 소리가 예년과 같은 강도와 빈도로 들렸다고 했다.

인근 검문소에 배치된 우크라이나군 소속 유리 마타르스키 대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교전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외교관 및 정보요원에 대한 추방 조치가 잇따랐다.

네덜란드 외교부는 이날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과 정보요원 등 17명을 추방했다. 자국 정보·보안 기관이 러시아 관계자들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지목한 것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러한 조치는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취해진 것이라고 했다.

벨기에는 간첩 활동 등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러시아 외교관 21명을 추방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러시아 대사관과 영사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와 체코도 총 5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주재 러시아 대사관과 벨기에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이같은 조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아일랜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독단적이고 근거 없는 결정"이라고 했고 벨기에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이러한 불친절한 행동은 해답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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