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교회에서는 성경일독 행사를 한다. 올해도 복음서의 앞부분을 읽다가 '예수를 찾아온 동생들'이란 기사 부분에 가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날 만남은 동생들 입장에서는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며칠 후 예수가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고향 사람들이 놀라서 수근거렸다.
아!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형제자매들이 있구나! 인성을 가지신 분이니까.
그런데 개신교 성경은 앞에서는 '동생들'이라고 쓰다가 네 사람의 이름을 밝힐 때는 '형제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친 형제인가 아니면 사촌형제쯤 되는가, 동생들인가 형인가 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성서화 한 폭이 생각났다. 성가족이 이집트로 피란 가는 그림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 하였을 때에 헤롯왕이 베들레헴 인근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살해할 것을 명령하였다. 요셉은 천사의 현몽에 따라 산모인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나귀에 태워 이집트로 피란을 가게 된다.
조토(Giotto)가 예수의 일생 연작으로 그린 <이집트에로의 피신(The Flight into Egypt)>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나귀에 타고 간다. 늙은 요셉은 나귀 고삐를 잡고 선두에 있고 천사가 길을 인도한다.
그런데 피란길에 또 다른 동행자가 보인다. 젊은 소년 하나가 요셉 옆에서 가고 나귀 뒤에도 말쑥한 소년 셋이 따라가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이집트까지는 약 1500 마일(약 2414 킬로미터)이나 된다. 험악한 산길과 메마른 광야를 지나 수천리 길을 갓난아이와 산모를 데리고 피란 가는 길이다. 이 어려운 피란길의 소년 동행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가족이 아니면 같이 갈수가 없다. 그럼 요셉에게는 또 다른 아들이 있단 얘기구나. 그림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예수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이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천 년 전인 4세기에 종교개혁적인 신학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주제는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이다.
당시 논쟁의 중심에는 개혁 신학자인 헬비디우스(Helvidius 또는 Helvetius)가 있었다. 그는 마리아가 예수 외에도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서의 4인의 형제는 마리아가 예수 이후에 낳은 동생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의 동정성을 강조하는 정통교부들 중 라틴어성경을 번역한 제롬(Jerome, 성 히에로니무스 340-420)은 383년에 <헬비디우스 논박,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마리아는 예수 이외에 다른 자녀를 낳지 않은 영원한 동정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형제자매는 "4촌 형제들"이라고 하였다.
정통교부 중 또 한 사람인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03년경)는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주장하면서도 제롬과는 달리 성경의 형제자매는 요셉의 전실 소생인 아들라고 하였다. 즉 예수와는 이복형제라는 주장이다.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 이전의 예수탄생 묘사에서 요셉의 역할은 매우 부차적이었다.
따라서 아기예수는 성모 차지이고 요셉 가까이에는 보이지 않는다. 요셉은 일반적으로 백발의 노인으로 표현된다. 어떤 그림은 성가족을 그리면서 요셉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희미한 모습으로 그리거나, 아예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는 요셉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반종교개혁 이후에는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젊은 모습의 요셉을 만나기도 한다.
무리요의 '성가족'에서는 어린 예수는 손에 새를 붙잡고 젊게 묘사된 요셉의 무릎에 기대어 작은 강아지와 함께 놀고 있다.
마리아의 탄생축일과 성모영보(수태고지)축일, 그리고 성모승천축일 등 3대 성모축일을 지키는 가톨릭 전통에서는 마리아의 조부로 부터의 가계가 확립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동정성'에 따라 복음서에 '예수의 동생'이라는 표현은 없고 원전에 따라 '예수의 형제'라고 번역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동정녀 탄생은 엄격히 지키고 있지만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예수 이외에 동생들이 있다는 헬비디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교회의 흠정역이나 NIV에서도 형제들(brothers)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NIV 주석에서 헬비디우스의 주장이 자연스러운 이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 성경은 다소 놀라운 번역을 하고 있다.
예수를 찾아온 형제들에 대해 처음부터 최근의 개역개정본까지 '동생들'이라고 번역하였다. 다만 개신교가 가톨릭과 함께 한 공동번역에서는 '형제들'이라고 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복음서에서도 4인의 형제들 이름을 열거한 부분에서는 시종일관 '형제들'이라고 하여 다소 헷갈린다.
1887년 만주에서 존 로스 선교사가 최초로 번역한 한글성경인 <예수셩교전서>에서는 형제들이란 표현은 없고 모두 '동생들'이라고 번역했다.
4인의 동생들은 예수공생애 초기와는 달리 예수부활 후에는 목숨을 거는 대전환을 하였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고 야고보서의 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야고보의 형제가 기록하였다고 밝힌 유다서의 저자는 바로 네 동생의 하나인 유다임을 인정받고 있다.
성경번역이 어떻게 변하던 간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사도들의 신조인 사도신경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귀중한 신앙고백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