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對 윤석열 대선 구도에… 친문 대 반문 총력전

尹, 문정부 ‘적폐 수사’ 의지 표명… 문 대통령 “강력한 분노”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은 2019년 11월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현 정부 적폐수사’를 언급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로 몬 것에 강력 분노한다"고 격노했다. 이에 따라 대선 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대 윤 후보에서 문 대통령 대 윤 후보 대결로 전환돼 친문 대 반문 총력전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대통령과 제1야당이 대립하는 전선이 형성된 것이라 남은 선거기간 판세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를 놓고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에 작심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엄정한 선거관리와 정치적 중립성을 공무원들에게 주문한 데다, 이번 선거기간 내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아던터라, 이날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윤 후보가 적폐를 예단해수사 의사를 밝힌 것은 금도를 넘었다고 판단해 경고한 것이다.

이같이 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건 윤 후보의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윤 후보는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누차 강조하곤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현 정부를 '적폐'로 규정한 윤 후보의 발언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대통령이 직접 정면으로 반박하며 겅력히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도 문 대통령의 제1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공세를 지원사격했다.

민주당은 윤 후보의 '집권 후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발언이 논란이 일자, 총공세에 나섰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찰의 정치보복이 당연한 나라, 윤석열 사단이 득세하는 검찰공화국, 특수검사 만만세인 나라"가 윤 후보가 꿈꾸는 나라의 청사진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출신의 대선 후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복 수사를 공약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도 "민주주의 기본을 흔들고 갈등과 혐오 조장하고 정치적 이득 꾀하는 것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수사가 필요하다면 윤 후보가 그 첫번째(수사대상)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했던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날 라디오에서 "뱃속에서는 보복의 칼을 이미 꺼내들었다", "비열하고 공포스럽다"며 윤 후보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이러한 동시 협공에 국민의힘도 발끈하고 나섰다. 당 일각에선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운동 아니냐"는 격앙된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준석 당대표는 즉각 SNS에 "정권을 막론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했던 우리 후보(윤석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며 "원칙론에 대해서 급발진 하면서 야당 후보를 흠집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앞으로 28일간 청와대가 야당후보를 사사건건 트집잡아 공격하려고 하는 전초전이 아니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허은아 당 수석대변인도 민주당의 공세에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전보다 더한 내로남불 적폐를 쌓아오는 것을 질리도록 지켜봤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와대와 민주당은 자신들이 적폐청산의 심판자이지 대상자는 아니라는 오만에 빠져 있다.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이 적폐 수사란 말에 유독 강력한 분노가 치민다면, 그것이야말로 본인들이 저지른 죄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도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수사의 원칙을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부당한 선거 개입으로 유감을 표한다"며 "민주당이 윤 후보 발언의 취지를 곡해해서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우려 들더니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세하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당 내에서도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도둑이 제발 저린 격. 죄가 없으면 왜 두려운가", "대통령의 선거운동"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경합 열세인 가운데 윤 후보를 '직격'한 것을 두고 판세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민주당은 윤 후보의 '집권 후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고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역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여권 지지층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여당 지지층 가운데 일부 강성친문 등에서 적극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윤 후보와 대립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강성친문을 비롯한 민주당의 전통지지층이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날 선 비판에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고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내심 호재로 여기는 기류도 감지된다. 반문,보수 지지층이 더욱 결집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이 아닌 문재인 대 윤석열의 세(勢)대결 구도로 흘러갈 경우 정권교체 여론이 현저히 높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리모컨 정치' 프레임으로 맞불을 놓는다면 윤 후보에게도 결과적으로 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불릴 만큼 거대양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윤석열을 놓고 저울질을 계속 해 아직 표심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국민의힘 쪽으로 좀 더 기울지 않겠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최근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의도적으로 대립각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 후보는 집권 후 문재인 정부의 적폐수사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 외에 전날 후보 직속 정권교체동행위원회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하는데 저는 그것은 사기라고 생각한다"며 "진짜 '친노(親盧·친노무현)' 내지는 좀 상식적인 분들은 제가 볼 때 이 정부하고 관계를 안 했거나 이 정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쓰지도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는 윤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이 당의 전통지지층인 보수진영의 결집력은 강화할 순 있지만, 중도층에 거부감을 불러 윤 후보의 외연확장에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다는 비관론도 없진 않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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