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강태중 평가원장이 15일 2022학년도 수능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출제오류 관련 소송 1심에서 패소하자 "책임을 절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평가원은 해당 문항에 대해 '정답 없음'으로 처리하고 응시자 전원 정답을 인정한 성적을 이날 오후 6시 공개하기로 했다.
강 평가원장은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재판부의 판결을 무겁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국민께 충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이날 오후 수험생 A군 등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상대로 "수능시험 정답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 대해 "명백한 오류"라며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논란이 된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집단을 가려내 옳은 선지를 구하는 문제다. 이 문항에는 총 156건의 이의신청이 제기됐다.
평가원은 이의 심사 과정에서 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생물교육학회, 한국유전학회 등 3곳의 자문을 받았다. 이후 이의심사실무위원회 심사와 이의심사위원회 최종심의를 거쳐 문제와 정답에 이상 없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동물 집단의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생명과학의 원리상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는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단Ⅰ, Ⅱ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고, 그러한 오류는 수험생들로 하여금 정답항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면서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험생들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평가지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대한 결정을 받아들여 항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김동영 평가원 수능본부장은 "더 이상 학생들이나 수험생, 학부모에게 피해를 드리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항소는 고민하지 않는다"며 "법원이 유일한 정답에 대해 결정 취소 처분을 했기 때문에 '정답 없음' 처리하고 성적을 재산출해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가원은 이날 오후 6시 생명과학Ⅱ 응시자들에게 해당 과목 성적을 공란 처리했던 성적을 전원 정답 처리해 온라인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같은 시각 평가원 홈페이지에 채점결과 변동 사항도 함께 게시하기로 했다.
당초 16일에서 18일로 미뤘던 수시 합격자 발표일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상태다. 각 대학은 전원 정답 처리된 성적을 토대로 수시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게 된다.
강 원장은 "평가원은 이번 일이 빚어진 데 대해 통렬히 성찰하고, 새로운 평가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며 "대입전형의 일정에는 더 이상 혼선이 일지 않도록, 남아있는 2022학년도 대입전형 절차를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수능에서 총 여덟 차례의 오류가 있었고, 그 때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를 수정하고 보완해왔다"면서 "출제 오류가 재발한 원인을 좀 더 심도 있게 파악해서 재발 방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수능 체제에 반영하겠다. 이의신청 절차 심의에 대한 불신을 없앨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대해 종합적으로 점검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신청인들의 손해가 발생할 경우 금전 등으로 보상할 수 없는 대입 합격 여부 결정이라는 점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며 처음으로 정답 효력을 정지한 바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