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년 2월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기 막바지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계기로 삼으려던 문재인 정부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미국 동맹국들의 보이콧 동참 여부에 국제사회 눈길이 쏠린 데 따라 한국은 미중 간 선택을 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였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어떤 외교·공무 대표단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이 열리면 통상 정부 고위급 등 정치 인사가 이끄는 대표단이 파견된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참석해 평화의 무대를 연출했다.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화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여느 올림픽처럼 치러진다면 한반도 관련국에서 온 정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이 주최국이란 점에서 조심스럽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을 예측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북한의 베이징 올림픽 참가 자격 상실이 겹쳐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올림픽을 외교적 무대로 남북 정상회담 및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그림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데 따라 이 구상은 사실상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4자 간 종전선언을 제안한 이후 정부는 한미를 중심으로 관련국과 논의에 총력을 다해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한미 간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소식통을 인용해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비핵화' 조항을 어떻게 포함할지를 놓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을 둘러싼 우려를 의식한 듯 올림픽이 종전선언의 전제 조건은 아니라고 거듭 밝혀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종전선언은 (동계올림픽이 아니라도)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만 갖춰진다면 성사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할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앞으로 외교적 보이콧은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 국가들로 확산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베이징 올림픽 참석을 공식화한 외국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일하다.
사키 대변인은 "그들(동맹국)이 결정을 내리게 둘 것"이라고 했지만 보이콧 이유로 "인권 유린"을 언급한 상황이다.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 인사를 보낼 경우 인권과 민주주의를 고리로 동맹국과 우방국을 규합하려는 미국의 대중 포위전선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