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크리스천들이 자주 말하는 격언들 중 하나다. 격언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면 성경에 기록돼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성경에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명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간디가 남긴 명언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이 메시지가 성경의 교리와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격언은 정말 성경적인 것일까? 해외 기독교 매체 '컴펠링트루스'는 성경구절들을 동원해 이 질문에 관한 답을 내놓았다. 번역 및 정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성경에 기록된 구절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적이다. 이 말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성경구절은 유다서 1장 22절~23절에 나와 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서에 실린 이 구절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자비와 연민을 베풀되 죄는 미워하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그 분의 거룩함으로 죄와 죄인을 미워하실 수 있으면서도 죄인을 사랑하시며 죄인이 회개해서 용서받기를 원하신다.(시편 5장, 말라기 1장 3절, 요한계시록 2장 6절 참조) 인간으로서,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도 없으며 완벽하게 미워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을 사랑하면서 죄는 싫어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부름 받은 자들이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는 것"이 이 부름을 성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가진 '사랑'의 속성을 따라가도록 부름 받았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장 8절 ~ 10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점에 주목하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은 그들이 겉으로 드러난 죄가 있는지 여부와 숨기고 있는 죄가 있는지 여부 등에 전혀 제한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대가는 사망이며, 우리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존중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이들이 삶 속에서 저지르는 죄악을 지적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묵과해 그들이 계속 죄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도록 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다. 다른 사람의 죄를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해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돌보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을 존엄한 존재로 대함으로써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죄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를 거부함으로써 죄를 미워할 수 있다. 죄인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서나 죄를 향한 우리의 미움에서나 우리는 한결 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고, 온유하고 존중 있는 말로 사람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