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대표적 책사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17일 차기 대선과 관련, "앞으로 두 세 주 안에 궤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지금 지지율이 고착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판을 뒤집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극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영입인재·비례대표 의원모임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신현영 의원은 전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크게 뒤쳐진 와중에도 이 후보와 민주당이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헛발질을 거듭하자 이대로 가면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시그널을 보내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에 강력 경고 "현 상황 매우 엄중"
신 의원에 따르면, 양 전 원장은 "저도 이번 대선 이후엔 문재인 대통령 퇴임에 맞춰 정치에서 퇴장할 계획"이라며 "따라서 오늘 이 자리는 어떤 면에서 정치적 고별의 의미다. 앞으로 정치적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여러분과의 인간적 인연만 남게 된다"고 운을 뗐다.
선거대책위원회 전면에 자신이 등판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관측을 일축한 셈이다. 그는 "이제 저도 멀리 물러가는 장강의 앞 물결이다. 우리 당도 변화가 필요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주도해야 한다"며 "따라서 이번 대선엔 당인의 도리를 다해 밖에서 필요한 일 돕고 후보에게 조언이나 자문은 하되 선대위에 참여하거나 전면에 나서지 않을 생각"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어 "현재 우리 당 상황은 현재 매우 엄중하다. 중요한 분수령에 있다. 앞으로 서너 주가 향후 석 달을 좌우하며, 그 석 달이 향후 5년 좌우할 것"이라고 말문을 연 양 전 원장은 작심한 듯 본선 레이스 돌입 후 펼쳐진 민주당과 후보의 난맥상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우선 이른바 정치권의 '10년 주기설'에 대해 "이번에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단언했다. 여론조사상 정권 교체론이 과반을 넘기는 와중에도 그간 10년 주기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선례에 비춰 정권 재창출에 낙관적 전망을 펼쳐온 민주당 내부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양 전 원장은 "지금까지 산술적으로는 그래 왔지만 이번은 불투명하다"며 무난한 정권 재창출 사례로 노태우·김영삼·박근혜 대통령을 꼽으며 각각 6.29선언, 첫 문민정부, 이명박(MB)과의 대척점으로 전(前) 정권과 차별화를 이뤘던 것을 언급한 뒤 "일종의 착시를 노린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권교체에 가까운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으나 지금 현실에서 그런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중도 확보 전략도 없고 경제 이슈도 선점 못 해"
차기 대선 키워드로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절박하게 생각하는 것은 코로나, 경제, 미래 세 가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전 원장은 "국가재정운용전략의 대전환, 중장기적인 바이오신약 대책, 신방역 의료체계 수립"을 코로나 관련 과제로 제시한 뒤 "현실은 우리도 저쪽도 그에 대한 자신 있는 그랜드 디자인을 아직 종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 정부 코로나 대응이 매우 우수한 편인데도 우리 당이 이슈 선점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 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대선에서 이번처럼 뒷전인 경우도 드물다. 네거티브 이슈와 돌발 이슈로 양측이 대치 중"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경제는 우리 후보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띄고 있는 분야인데 한 달 먼저 후보를 확정하고도 다양한 경제이슈를 선점하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고 쓴소리를 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이 어떤 미래를 꿈꿀지, 우리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도약하고 뻗어갈지 목표를 제시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당, 포지티브한 비전을 내놓는 쪽에 상당한 승산이 있다"면서도 "매우 담대한 비전과 공약과 대안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프레임 전환을 못하고 있는 상태로, 저쪽 당과 확연한 차별화를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전 원장은 특히 "모든 대선에서 관건은 중도확장 싸움"이라며 "당내 경선 과정에서야 진영내 지지표 결집이 우선이지만 후보 확정 후에는 과감한 중원 진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쪽 의제와 이슈는 전혀 중도층 확보전략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선대위 희한해…인사안 짜다 천금같은 한달 허송"
민주당을 향해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의 시 '그 날'의 마지막 대목이다. 우리 당 현실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그 표현이 정확하다"며 "절박함이 안 보인다. 저쪽과 너무 대비된다"고 힐난했다.
그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위기감이나 승리에 대한 절박함 절실함이 안 느껴진다. 의원들의 한가한 술자리도 많고 누구는 외유 나갈 생각 하고 있고 아직도 지역을 죽기살기로 뛰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며 "대선 넉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이렇게 유유자적 여유 있는 분위기는 우리가 참패한 2007년 대선 때 보고 처음 본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후보만 죽어라 뛰고 있다"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분들이 벌써 마음 속으로 다음 대선, 다음 대표나 원내대표, 광역 단체장 자리를 계산에 두고 일하는 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탄식이 나온다"고 개탄했다.
뒷말이 무성한 선대위에 대해서도 "희한한 구조다. 처음 보는 체계로 매우 우려스럽다. 권한과 책임이 다 모호하고 명확한 의사결정구조를 못 갖춘 매우 비효율적 체계"라며 "주특기 전문성 중심 전진배치가 아니라 철저한 선수 중심 캠프 안배 끼워맞추기다. 우리에게 천금같은 한 달의 기간을 인사안만 짜다가 허송(세월했다)"면서 송영길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해법으로는 "지금처럼 후보 개인기로만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후보 핵심 측근들과 선대위 핵심 멤버들이 악역을 자처하고 심지어 몇 명은 정치를 그만둘 각오까지 하고 후보를 중심으로 키를 틀어쥐고 중심을 잡아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으면 승리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李 핵심들 정치 관둘 각오로 컨트롤타워 역할해야"
양 전 원장은 "과거 한나라당이 천막당사 하던 마음으로, 후보가 당내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할 상황"이라며 "당 전체가 해현경장(解弦更張, 느슨하게 늘어진 활시위나 악기의 줄을 다시 조여 매어 팽팽하게 함) 해야 겨우 이길까말까 하다"고 단언했다.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데 대해선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응답률과 응답층에서 오는 굴절이 있고 특히 실제 선거 당일 세대별 계층별 투표율이 예측, 반영되어 있지는 않는다"고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거론한 뒤 "최근 여론조사만 갖고 좌절하거나 낙담해선 안 된다"며 "그보다 더 큰 위기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고 답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선 "지역구 의원이든 비례 의원이든 특정 분야 정책 전문성을 잃으면 보람이 없어지고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 줬으면 한다"며 "그 순간부터 '동냥벼슬'이 돼 생계형 직업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어떤 경우에도 스타일리스트형 정치인은 제발 안 되셨으면 하는 게 간곡한 부탁"이라며 "하찮은 패션 따위로, 튀는 표현이나 말장난, 돌출 행동 등으로, 그저 뜰 수만 있다면 SNS를 통해 뭐든 하려는 분들 많이 본다. 각자가 정치적 정책적 신념은 확고히 가져주시되 행동에서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원칙을 지켜주셨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천막당사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3~4주 마지막 시간"
양 전 원장은 결론적으로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며 "전열 정비하고 비장하게 마음 먹으면 우리 당 저력이 있고 국회의원 170여명, 광역 및 기초 조직과 기반은 우리 당이 훨씬 탄탄하다. 향후 서너 주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맹성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3철'의 일원으로 꼽혔던 양 전 원장은 지난 대선과 총선 승리에서 혁혁한 역할을 해 여권의 대표적 '킹메이커'로 불린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