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지운(57)에게 애플TV+ 드라마 '닥터브레인'은 도전이었다.
첫 드라마 연출이고, OTT 플랫폼 애플TV+를 통해 국내뿐만 해외에도 공개 돼 의미가 남다르다. 그 동안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는 웹툰이 원작인 작품을 택했다. '사람의 뇌를 들여다 본다'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영화 분량의 2~3배를 찍어야 해 힘들기도 했지만, "좀 더 기민하게 판단했다.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가지고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4일 공개한 닥터브레인은 유년시절 어두운 기억을 가진 천재 뇌과학자 '고세원'(이선균)이 성인이 된 후 가족을 둘러싼 의문의 사건·사고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세원은 자신의 뇌를 동기화해 타인의 기억을 본다. 총 6부작으로 액션, 느와르, 미스테리, 스릴러, 휴머니즘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다. 홍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1화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서스펜스, 미스터리, 호러 분위기를 녹였다. 매회 각기 다른 장르를 구사한 건 의도한게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매회 장르가 달라졌다. 그동안 쌓았던 나의 영화적 역량을 이번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게 됐다. 홍작가 웹툰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그래픽노블체였다. 느와르풍이고, 음영과 명암이 강조되면서 인물과 심리를 과감하게 보여줬다. 그래픽 노블처럼 높은 완성도, 스타일리시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다뤄 연출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김 감독은 먼저 '사람의 뇌, 기억을 들여다 보는 게 가능한가?' 부터 궁금했다. 뇌과학 서적을 찾아보고, 카이스트 정재승 뇌공학 박사에게 자문도 받았다. "이론적으로 가능해 가설, 실험 등을 전제로 하고 드라마적 요소를 끌어왔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인 이선균(46)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고세원은 차갑고 감정이 없는 인물인데, "이선균은 무감 상태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너무 고립 돼 있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관객들이 인물을 따라가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며 "조금씩 온도를 높여 온기를 줬다"고 덧붙였다. "이선균은 연기 스펙트럼이 넓고 이해력이 뛰어나다. 함께 작업한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선균은 약간 중상층의 호감형 남자 느낌이 있다. 편하게 감정을 전달해서 관객들도 친숙하게 다가가게끔 만든다"고 극찬했다.
이선균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2019)을 통해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세원 조력자인 '이강무' 역의 박희순(51) 역시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으로 많은 해외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보너스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도 "배우들의 인지도와 명성 등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닥터브레인 촬영할 때는 마이네임 공개되기 전이었다. 박희순은 신뢰로 함께 했다. 마이네임과 상과없이 존재감이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국내 영화는 감독 역량이 절대적이다. 반면 해외 작품은 감독과 배우 등이 수평적으로 의사소통 하는 편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 역시 다르지 않다. 김 감독은 "이미 한 번 할리우드에 가서 상업영화를 해 지금의 구조가 아주 낯설지는 않다"면서도 "한국영화 현장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제한적인 시스템 안에서 감독이 정점에 있고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 돼 있다. 미국은 감독, 주연배우, 작가, 스튜디오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서로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할 때 계속 의견을 조율하면서 만든다"고 짚었다.
"닥터브레인도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다"며 "영화는 개인의 스타일을 가미해 관객들과 만나는 접점을 고민한다면, 닥터브레인은 시리즈 드라마인 만큼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을 적용해 대중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감독의 표현, 비전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의견을 끊임없이 조정했다"고 강조했다.
닥터브레인은 매주 한편씩 에피소드를 공개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 대부분의 OTT 플랫폼이 한 날에 전체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것과 비교됐다. "개인적으로는 통으로 보여줘서 총평을 듣고 싶다. 일주일이 기다려질 수도 있고, 좀 기다림에 지쳐서 감흥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원래 평을 많이 안 찾아보는 편인데, 초반에 대충 분위기가 어떻게 가나 궁금해서 보긴 한다. '이야기 전달성이 좋고 특유의 음악, 캐릭터를 다루는 스타일이 잘 버무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바랐다.
김 감독은 계속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1998년 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해 '반칙왕'(201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밀정'(2016) '인랑'(2018) 등을 연출했다. "남들이 들으면 재수없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익숙해지고 성공했다고 똑같은 장르를 연속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매번 다른 장르, 다른 이야기에 호기심이 간다. 이 나이 먹도록 계속 작품하는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영화감독이니까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영화산업이 다소 위축되면서 보수적으로 변했다. 반면 드라마는 OTT 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표현 수위, 다를 수 있는 소재가 넓어졌다. 영화 작업하려고 하는데 지금의 위축적인 분위기 때문에 좀 더 모험적인 걸 시도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OTT로 가야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드라마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한편 완성 짓고 다음편 기대하게 만드는 걸 고민하고, 관객들과 맞아 떨어지면 쾌감도 있다. 피드백도 빠르게 와서 다이나믹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병행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