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눈물로 부르던 흑인 영가(靈歌)이다. 평생을 노예로서 고달픈 일생을 보내던 그들이 죄 없는 주가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들의 삶을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그 구슬픈 영가가 지금 우리 찬송가에 수록되었다.
나는 이 영가를 읊조릴 때마다 갈보리산에서 십자가 처형이 있던 그 때 거기에 누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정오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마저 모두 무서워 달아난 거기에 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십자가 고난을 표현한 여러 장의 성서화를 한 장 씩 살펴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간악한 유대 지도자나 죄수의 속옷을 제비뽑아 나누던 무지한 로마 군병을 제외한 성경 속의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십자가 수난이라는 주제의 작품들은 전개과정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나타나는 성경의 인물은 조금씩 변한다.
첫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Christ Being Nailed to the Cross) 도형이다. 성 금요일 정오 무렵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눕혀진 주의 발과 양 손에 망치로 못을 박는 장면이다.
이 때 에는 성모와 사도요한, 막달라 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은 복음서의 기록과 같이 멀리 서서 바라보고 있다.
둘째는 형이 집행되어 주께서 피를 쏟는 십자가 처형(The Crucifixion)이라는 도상이다. 이 과정에서는 통상 5 인이 등장한다.
성모는 슬픔에 겨워 기절하고 있으며 두 여인이 부축하고 있다. 눈물을 닦는 사도요한과 주님 발 앞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다.
셋째는 십자가에 달린 주님 양 쪽에 성모와 사도요한을 배치한 도상이 가장 많다. 이러한 도상을 데이시스(Deesis)라고 한다.
주님이 십자가 현장에서 직접 대화한 사람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이는 이 두 사람뿐이기 때문에 이러한 도상이 생긴 것이다.
주님은 운명하기 전에 성모에게 '어머니여 아들입니다'라고 고별인사를 했으며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어머니시다'고 자신의 모친을 부탁하였다. 요한은 그 때부터 성모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다고 스스로 쓴 요한복음서에 기록하여 놓았다.
넷째로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The Deposition)라는 도상이 있다. 처형이 끝난 그 날 오후 모든 군중이 돌아가고 어둠이 깃들 무렵, 죽은 그리스도를 장례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부각된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유대공회 의원이다.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시체인수를 요청하여 자기 묘실을 드렸다.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거듭남'에 대해 배웠던 니고데모는 장례용 향품을 가져왔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이 도상에서는 일반적으로 7 인이 등장한다.
이 도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에 있는 피에트로 로렌체티(Pietro Lorenzetti)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있다.
십자가에 걸쳐진 사다리 앞에 선 아리마대 요셉은 그리스도의 상체를 들고 있으며 성모는 머리를 부축하고 있다. 성모의 뒤쪽에는 여인이 둘이 있다. 그림의 왼쪽 부분에는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의 다리를 들고 있고 니고데모는 발에 몰약을 바르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저녁 식사 때 예수의 발을 씻기고 향유를 바른 성서의 내용대로 십자가 도상에서는 언제나 예수 발아래 꿇어앉는 것이 정형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로히르 반 데르 베이덴(Rogier van der Weyden)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에서도 등장인물은 도상에 따라 역시 7인이다. 여기서는 니고데모가 상체를 받쳐주고 있으며 요셉은 다리 쪽을 들고 있다. 오른편의 성모는 기절하고 있으며 사도요한과 두 여인이 부축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발치에 서서 기이한 자세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를 부축하는 여인은 누구일까?
일반적으로 성모 뒤쪽의 여인은 2인이지만 간혹 4인을 그리기도 한다. 성경에서 십자가 처형 전후에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성모와 사도요한, 막달라 마리아,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등 5인은 이름이 분명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의 이름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둘 다 마리아란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와는 자매관계로서 예수의 이모이다.
갈릴리에서 온 한 여인의 이름에 대하여 마태복음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적었다. 마가복음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누가복음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로 적고 있어 공관복음의 기술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라 하여 혼동을 주고 있다.
중세 이래 성모 마리아의 탄생축일을 지키는 가톨릭 전통에서는 정경에는 없지만 여러 외경에 근거하여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 등 가계에 대한 확립된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 따라 첫 번째 마리아를 복음서 기술에 따라 정리하면 이 마리아는 글로바(클레오파스)의 딸이며 알패오의 아내인 마리아로서 사도인 작은 야고보와 시몬과 다대오 그리고 의로운 요셉의 어머니이다.
갈릴리에서 온 두 번째 마리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라고 했으나, 마가복음은 두 번이나 살로메란 이름을 기록하였고, 누가복음에는 갈릴리로부터 온 여자들, 요한복음에서는 이모라고 적고 있다.
이 두 번째 마리아를 전통에 따라 정리하면 두 번째 마리아는 살로메의 딸이며 세베대의 아내인 마리아로서 열 두 사도 중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모'라고 기록한 것이다.
성모의 자매 마리아는 성서화에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무덤의 세 마리아(The Three Marys at the Tomb)' 도상이다.
부활한 아침 세 마리아(막달라 마리아,성모의 자매인 클레오파스의 마리아와 살로메의 마리아)가 무덤에 향을 바르기 위해 왔으나 천사가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고 한다.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의 프라 안젤리코의 '부활한 그리스도' 에서는 성모 마리아도 함께 있는 네 마리아를 그렸다.
로마넬리가 그린 '3인의 마리아' 에서도 네 마리아의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두려움이 혼합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모의 뒤에 여인이 둘이 아니라 넷인 경우도 더러 있다. 이 경우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와 수산나를 포함시킨 것이라 하겠다.
가계에 대한 확립된 전통은 중세 이래 많은 성서화에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성서 속의 궁금증은 앞으로 성서화를 통해 계속 풀어보고자 한다.
지금은 3월말까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갈보리산 위에는 사랑하던 제자들 중 요한만 보이고 다른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나무에 달릴 때....
지금도 이 영가를 부르면 그 흑인들처럼 가슴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