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적 화해, 하나님 내미신 용서의 손길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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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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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 신시내티에 있는 사람들의 교회(Peoples Church)에서 교인들이 예배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람들의 교회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덕 로건(Doug Logan Jr.) 박사가 쓴 ‘인종적 화해를 위한 핵심 비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최근 소개했다. 덕 로건 박사는 액츠29(Acts 29) 네트워크의 부이사이며, 버지니아 리치몬드에 위치한 그림케 신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진보 기독교 목사이며 시민 운동가인 존 M. 퍼킨스의 말을 인용, “우리는 화해를 위한 이 투쟁에서 도움을 얻기 위해 모든 잘못된 곳을 찾아왔다. 우리는 사회 복지 기관과 정부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의 신성한 힘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크클리프바이블펠로우십 교회’ 창립자인 토니 에반스 목사의 말을 빌어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한 쪽을 편들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다는 진리에 항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킹덤 신학에 뿌리를 둔 일치된 관점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타락을 언급하며 그는 “그 정원에서 일어난 일은 엄청난 규모의 우주적 붕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선물이 주어졌다”며 “하나님은 팔을 쭉 뻗고 계신 하나님이며, 그분의 백성과 화해하기를 열망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하시는 분”이라고 증거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히셨다고 말한다. 또 수천년 후, 하나님은 친히 우릴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화해의 궁극적인 행동을 시작하셨다”고 덧붙였다.

로건 박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이루신 진정한 화해, 즉 하나님과의 화해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우리가 이 영적 화해를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적 화해를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로건 박사가 말한 인종적 화해를 돕는 세 가지 진리에 관한 요약이다.

1.우리는 이미 상상 이상으로 화해했다.

어떤 식으로든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상황적 예수(situational Jesus)’가 아닌 우주와 천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신 ‘우주적 예수(cosmic Jesus)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화해를 위한 노력을 일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작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리에만 관심이 있는 해적판 버전의 하나님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크고 성경적인 관점은 하나님이 우리의 교리가 어떻게 실현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은혜의 복음 안에는 구원과 죄의 용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 이상의 것이 내포돼 있다. 참된 복음의 메시지에는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그 분의 말씀, 즉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가 담겨 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그분의 큰 복음은 예수의 모든 제자들을 자신과 화목케 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이미 우리를 그분의 한 가족으로 이끄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다. (롬 12:5)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화목하게 하여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 (엡2:14)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 백인이나 흑인, 남자나 여자 사이에 분리나 적대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우리는 모두 함께 화해되었다. 인종적 화해는 우리가 이미 화해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화해되었기 때문이다!

2.화해는 대립 뒤에 온다.

우리들 중 대립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때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보면 결코 대립을 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모든 기회를 사용하여 백성들이 들어야 할 교훈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대립을 피해 도망칠 때가 많지만, 예수님은 공의와 정의를 향해 달려가셨다. 그것이 비록 복음에 반대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될지라도 말이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진실하고 사랑스러운 대립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잘못된 것에 기꺼이 맞서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화해했다면, 심각한 이견이 있을 때에도 그 문제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다. 가족간의 유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성경은 우리가 화를 낼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 맞서고 폭로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부로서 우리의 소명과 진정한 화해를 찾는 법을 더 명확하게 한다.

3.기독교인은 최고의 화해자가 된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화해를 위한 불법적인 시도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들은 더 강력한데,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논쟁하면서, 애매한 말로 우리의 편견을 정당화하거나 부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화해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도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전우주적 호소(cosmic punch)이다. 먼저, 예수께서 모든 것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행하신 일의 능력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경외와 감사는 우리의 논쟁을 멈추게 하며, 우리는 다르게 살기 시작한다. 세계관, 피부색, 정치, 출신, 선호도 또는 나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우정을 발전시키며, 우리 삶과 행동 및 말들이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대대로 그 분은 계속해서 그분을 더 닮아가는 백성을 만드신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프라이팬으로 하는 작업이 아닌 천천히 끓이는 일과 같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도기 냄비와 같은 비전(crockpot vision)’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듯이, 우리도 공동체와 사랑, 화해를 위해 오랜 기간 헌신해야 한다. 힘든 시기에도 우리는 도망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헌신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 옛날, 그 동산에서 팔을 뻗으신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는가? 인종적 화해의 노력은 그분과 같이, 우리에게도 참된 화해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필요할 때는 건전하게 대립하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해자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신실한 삶을 살도록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