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큰빛교회 1대 담임목사였던 故 박재훈 목사(1922~2021)의 천국환송예배가 지난 7일 오전(현지 시간) 토론토 큰빛교회에서 개최됐다. 고인은 한양대 음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서울 영락교회에서 故 한경직 목사와 동역한 뒤 캐나다로 가서 1984년 토론토 큰빛교회를 개척하며 수많은 찬송가 등을 남겼다.
고인이 남긴 대표적인 찬송가로는 ‘눈을 들어 하늘 보라’(515장, 작사 석진영), ‘주여 어린 사슴이’(392장, 작사 전영백),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592장, 작사 임옥인), ‘예수님의 사랑은’(561장, 작사 안성진), ‘어서 돌아오오’(527장, 작사 전영택), ‘지금까지 지내온 것’(301장, 작사 T. sasao) 등이 있다. 이외에도 오페라 ‘손양원’ ‘유관순’ 등의 오페라곡과 합창곡도 남겼다.
이날 예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소수의 인원만 현장에 참석한 채 온라인 유튜브로 진행됐다. 토론토 큰빛교회 3대 담임인 노희송 목사의 인도로 시작된 예배는 다 같이 사도신경 고백에 이어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를 부른 뒤 송민호 목사(토론토 영락교회)의 기도에 이어 고인의 유가족인 딸 김순혜 사모, 아들 박기성 목사의 조사를 듣는 순서가 이어졌다.
박 목사는 조사에서 “내가 젊었을 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선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게 더 힘들다고 느낀다. 믿음의 사수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싸움”이라며 “아버지는 그런 순수한 신앙을 죽을 때까지 지키셨다. 아버지는 치장하지 않으시고 단순하신 분이셨다. 그분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주님 되신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에겐 음악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하나님, 교회, 가족, 나라에 대한 사랑인 것”이라며 “그 분은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사셨다. 쓰러지기 몇 시간 전까지 음악을 작곡하셨다”고 했다.
이어 박재훈 목사의 생전 영상이 재생된 뒤 노희송 목사의 성경봉독에 이어 토론토 큰빛교회 2대 담임이었던 임현수 목사가 ‘100년 찬송의 열매’(사 43장 21절, 시편 33편 1절)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임 목사는 “목사님은 99세까지 맑은 정신으로 사시다가 넘어지셔서 딱 이틀 동안 병원에 계신 뒤 3일 만에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박 목사님의 생애를 생각하면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라‘는 구절이 떠오른다”며 “박 목사님의 아름다운 노년도 많은 열매를 맺은 종려나무, 향기로운 재목인 백향목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목사님은 일본 식민통치라는 고달프고 힘든 시기에 태어나셨다. 박 목사님은 생전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태어나셨다. 한국교회 음악계의 큰 별로 흑암에 앉았던 우리 백성에게 소망을 주셨다. 동요, 합창곡, 찬송가, 오페라 등 수 많은 작은 별도 거느리셨다”며 “남이 도전하지 않는 산지에도 도전하셨다. 하니님은 친히 나이가 아닌 비전에 따라 일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고 했다.
그는 “박 목사님은 하나님께 일평생 온전한 순종을 하신 분이다. 철저한 사명감에 불탄 인생으로 강력한 정신력을 갖고 사셨고,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도 남다르셨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산 헌신과 용기가 아주 뛰어나신 분”이라며 “목사님은 6.25 전쟁 고아들을 모아 합창단을 구성하셨다.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동역하셨고 한양대 등에서 교수로 헌신하셨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귀한 일에 동참하셨다”고 했다.
임 목사는 “60살이 넘어선 박재훈 목사님은 캐나다에서 외로운 성도들을 위해 1984년 토론토 큰빛교회를 개척하셨다. 담임목사로 은퇴하신 뒤에도 7년 동안 성가대 지휘자로 섬겨주셨던 겸손한 목회자이기도 하셨다. 항상 예배시간 맨 앞자리에서 설교를 경청하시고 ‘아멘’으로 화답하셨다”며 “모세와 바울처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셨다. 한국전쟁 직후 작곡한 어린이동요 150여 개로 전국의 학생들이 일본동요 대신 부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한 “작곡하신 여름성경학교 주제곡으로 수 만개 전국 교회학교 아이들이 목청 높이 부를 수 있었다. 60년이 흐른 지금 동요를 부른 아이들은 성인이 됐다”며 “그 밖에 찬송가 800여 곡, 유관순, 손양원 등의 오페라, 수 많은 합창곡을 남기셨다”고 했다.
임 목사는 “내가 목회할 동안 하나님 앞에서 박 목사님과의 어떤 갈등도 겪지 않았다. 왜냐면 그분은 검소한 삶을 사셨고, 욕심이 없는 최고의 인격자셨기 때문이다. 36년 동안 지켜본 박 목사님의 모습은 마음이 맑으셨고, 나 같이 허물많은 사람과의 갈등도 없었으며 모든 것을 예수님처럼 관용하시고 참아주신 성자와 같은 분”이라며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다. 북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복음 통일을 애타게 바라셨던 애국자 목사님이셨다”고 했다.
아울러 “오늘 예배 날짜가 내가 북한에서 석방됐던 날이기도 하다. 박재훈 목사님은 나의 석방을 위해 애타게 기도하셨다”며 “많은 선교사들이 박재훈 목사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우리 교회는 박재훈 목사님이 계셔서 3대 목회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 분은 하나님 앞에 불러가셨지만 남기신 보석같은 작품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의 후배 목사들이 보내온 영상 조사를 듣는 순서가 이어졌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는 “박 목사님이 만드신 모든 찬송은 한국교회의 모유식이었다. 박 목사님이 지으신 여름성경학교의 교가로 아이들은 위대한 여름날의 꿈을 꿨다. 잊어버린 양들을 되찾기 위한 전도의 헌신도 주께 드렸으며, 우리 시대 암울한 청년들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며 박 목사님의 찬양을 들었다”며 “박 목사님이 작곡하신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양으로 세월의 감사를 주님께 드렸다”고 했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는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아이들이 부를 동요가 없어 한탄하셨던 박 목사님은 우리말에 우리 선율을 얹어 동요를 만드셨다. 그 분은 찬양의 사람이셨다. 우리 민족이 만든 찬송 가운데 아름다운 것들 모두가 박 목사님의 삶에서 우러나온 찬양이었다”며 “에스더, 유관순, 손양원 등 박 목사님이 작곡한 오페라를 통해 민족의 슬픔 속에서 소망을 일궈내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다.
문성모 목사(강남제일교회 담임)는 “박 목사님은 내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 언제나 목사님을 볼 때마다 감동과 교훈을 얻었다. 목사님처럼 살다가는 것이 내 소원 이었다”며 “마음 속으로 존경하다 오페라 ‘손양원’을 직접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신 박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뵌 적이 있다. 박 목사님 전기를 쓰고 싶어 직접 요청 드렸고 흔쾌히 허락하셔 2013년 책을 냈다. 또한 3.1운동에 관한 오페라 대본도 직접 부탁하셔서 쓴 게 '함성 1919'였다. 목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그 삶은 영원히 우리 뇌리 속에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