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 맥아더 목사가 2015년 예수의 비유를 다룬 책 "Parables: The Mysteries of God's Kingdom Revealed Through the Stories Jesus Told"을 출간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맥아더 목사는 12개의 비유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한다.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존 맥아더 목사의 비유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맥아더 목사가 10번째로 선택한 비유는 누가복음서 16장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다른 비유와 달리 그 핵심을 파악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예수는 비유 속의 청지기가 '지혜 있게' 일하였다고 칭찬하시지만 동시에 그 청지기를 '옳지 않은' 청지기로 묘사하시기 때문이다. 맥아더 목사는 이 비유가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가장 놀랍고 기이한 비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부자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는데, 그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주인의 귀에 들렸다. 이에 노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그를 해고할 생각으로 하던 일을 정리하라고 한다. 청지기는 일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집에서 쫓겨난 후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러다가 그가 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기는데, 그 내용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 빚을 청지기라는 직책의 재량에서 탕감해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주인의 재산을 착복하는 행위이다. 심지어 그가 탕감해주는 빚의 양이 적지 않다.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청지기에게 매우 고마움을 느끼겠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이 청지기는 자신의 재산을 횡령한 자에 다름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 청지기를 '옳지 않은 청지기'라 정의하시면서도 다른 편으로 그 주인이 청지기를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다고 하셨다. 이 비유 속에서 청지기의 행동이 어떤 면에서 지혜가 있는 행동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 비유 이해의 핵심이 될 것이다.
여기서 부자는 상당한 규모의 부자였을 것으로, 그리고 청지기는 부자의 신임을 받는 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유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채무 양은 두 사례인데 각각 '기름 백말'과 '밀 백석'이다. 맥아더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기름 백말은 3,300리터가 넘는 양이었고, 가격으로 따지면 1,000데나리온이다. 청지기는 이 기름 '백' 말을 '오십'으로 깍아주는데, 이는 노동자의 일 년 반 품삯에 해당되는 가치를 지닌 양이다. 또 '밀 백석'은 이만한 양의 밀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땅이 거의 13만 평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적으로 농부가 8년에서 10년은 농사지어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며, 이 가운데 '이십 석'을 깍아준 것은 2년 치 품삯을 감해준 것이라 한다. 맥아더 목사는 이 채무 규모를 들어 부자도 굉장히 거부였을 뿐만 아니라 이 부자가 고용한 청지기 역시 능력과 재능이 뛰어난 관리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적지 않은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직책에 부자도 신임할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고용했을 것이다.
맥아더 목사는 이 청지기에 대하여 먼저 부정적인 면을 서술한다.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로 일컬으신 이 청지기의 행실은 "악하고, 교활하고, 부도덕하고, 뻔뻔하게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함부로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이 해고를 통보하고 결산을 보고하라고 요구했을 때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오히려 "주인을 좀 더 속이기로 결심"한다. 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위가 '지혜로운 행위'가 된 이 어려운 이야기는 "예수님이 만드신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를 들은 청중이 놀라고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면 이 역시도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고 맥아더 목사는 밝힌다. 맥아더 목사는 이 비유를 이해하는 첫 단추로 이 청지기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임을 말한다: "이 비유는...이미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 비유에는 제자직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신자들을 위한 비유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맥아더 목사는 강조한다. 마태복음 24장의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이나 혹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에서 나오는 주인과는 다른 맥락이다. "예수님은 일부러 세상의 속된 사업, 곧 이기적인 권모술수와 부패한 책략이 종종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간주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 비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다." 이 구도에서 맥아더 목사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행위가 어떻게 '지혜로운 행위'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세 가지 관점으로 해설한다.
맥아더 목사가 밝히는 이 비유의 첫째 교훈은 "재물은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데 사용해야 할 자산이다"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우리에게는 주님이 허락하신 재물로 영원한 삶을 위해 친구들을 사귀라는 명령이 주어졌다"라는 것이다. 세상의 부는 늘 여기서 저기로 흐르는 것이고 또한 이것들은 언젠가 소멸되는 것들이다. 맥아더 목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청지기'인데, 청지기로서 우리의 역할을 우리 자신을 위하여 개인적인 재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허락하신 재물로 영원한 삶을 위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고, 이렇게 얻어진 관계들은 궁극적으로 "천국을 영원히 부유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개인의 재산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산을 복음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는 것도 포함된다.
두 번째 교훈은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항상 청지기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권고가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권고는 우리 자신을 살피는 문제이다. 맥아더 목사는 우리의 소유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에게 위탁된 하나님의 소유"이자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임을 이해하고 이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많은 재물을 무작정 많이 베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영원한 것에 재물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칭찬받을 만한 청지기는 영적인 성품과 정직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 영원한 것에 투자하는 것이 큰 가치가 있음을 깨달은 청지기라고 그는 부연한다.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을 모셔야 할 마음의 자리에 재물을 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맥아더 목사는 청지기 직무를 수행하는 청지기의 태도가 "참 신자인지 믿음을 가진 척 하는 거짓신자인지를" 밝힐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밝힌다. 많은 재물을 가진 자가 그 재물을 누구에게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쓰는 지를 보면 그가 오로지 청지기로서 재물을 사용하는지, 혹은 그 재물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역설한다. 청지기가 '재물'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생각과 실행의 문제에 있어 끊임없이 선택의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이 비유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는 가르침으로 끝난다. 재물을 맡고 있는 청지기는 마치 숙명처럼 재물(맘몬)을 섬기려는 충동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비유는 재물을 맡은 자가 재물 그 자체보다 이웃과 세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그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실존에서 몇 마디 교훈으로 해결될만한 쉬운 것이 아니다. 그토록 율법에 열심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이 모든 비유를 듣고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누가복음서 기자는 끝에 추가하였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누가복음16:14) 칼빈이 말한바 마치 인간 안에는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수단을 쉽게 우상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는 것은 단 한 번의 결심이나 행위로 완성되는 문제가 아닌, 신자들의 믿음의 여정 가운데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