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 '종교교육'은 없습니다.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서도 '기독교 교육'은 제한받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만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가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이라는 책에서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기독교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17세기 코메니우스도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종교교육의 문제에서 주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코메니우스의 교육체계에서 이것은 '지성, 덕성, 경건성'으로 설명된다. 지성은 정신 및 이성이다. 코메니우스의 교육 체계에서 덕성은 "정신(이성)의 배움에서 얻게 되는 사람(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야 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자질"이고,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신앙이다. 이성과 신앙의 관계는 지성, 덕성, 경건성의 관계성에서 설명된다.
코메니우스는 범지혜 교육을 강조한 사람으로 신앙 교육을 중요시했지만, 그렇다고 지성을 신앙 아래 두지는 않았다. 그는 지성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았고, 지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했다. 덕성과 경건성이 인간성의 기본자질이지만, 지성(앎)이 없이는 덕성과 경건성의 역할도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정일웅은 코메니우스의 지성과 덕성과 경건성의 조화를 추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올바른 앎(지식)이 없이는 덕성과 경건성은 자연과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 지식 없이는 덕성과 경건성에 부여된 가치나 책임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구체적으로 행해야 할 행동을 바르게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정신)은 "사물의 가치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기능"을 하고, 덕성과 경건성은 "지성(앎의 능력)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코메니우스의 이성과 신앙의 조화가 결국 향하는 방향은 "올바른 행함"이다. 코메니우스의 교육 철학은 형이상학적인 사유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히 구체적인 삶에서의 적용을 지향한다. 정일웅은 이성으로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덕성과 경건으로 사물의 가치를 바르게 분별할 때 "배움에서 획득한 가치들이 올바르게 사용될 때, 그것이 전체를 아는 지혜의 올바른 사용이 거기서 실천되는 것이다"라고 부연하였다.
이성과 신앙의 조화로 기대되는 '올바른 행함'에서 코메니우스는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경건을 통해서만 사물에서 획득된 지혜의 '올바른 사용'(Usus)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코메니우스의 범지혜 교육, 그리고 이를 위하여 이성과 신앙이 조화된 교육의 종착점은 지혜의 올바른 사용, 즉 올바른 행위인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이 면을 야고보서 성구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4:17)를 인용하면서 여러 번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근저에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이끌어 주는 것을 '신앙교육'으로 삼고 이에 대한 체계를 기획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종교교육을 할 때 그 목적을 분명히 생각해봐야 한다. 종교교육이 단순히 교리를 가르쳐서 교회의 성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하자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그리고 수평적으로는 세계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와 이웃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교육,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에 있어서 종교교육과 공교육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트랙에 있다.
참고한 책
-정일웅,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범지출판사)
-정재현, 『신학은 인간학이다』 (분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