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돌보던 부산 서구 아미동 소재 은천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부산시 서구청은 오는 17일부터 은천교회 철거에 착수한다. 2014년 교회가 자리한 아미동이 ‘아미4행복주택’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이에 필요한 도로 확장 계획에 교회 부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은천교회는 6.25 사변 당시 기독교대한감리교(기감)가 미군부대에게 지원받은 식량을 강냉이죽으로 끓여 피난민들에게 보급했던 곳이었다. 천막 형태로 피난민들의 임시거처였던 은천교회는 이후 1955년 피난민들이 화강암을 재료로 새로 건축해 현재의 석조건물로 남아 있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이 교회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철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서구청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소유주 측에서 문화재등록 신청을 하지 않았다"며 "건물 자체가 문화재로 등록됐다면 철거가 이렇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부산시 서구청 건설과 관계자도 "역사적 가치로 인해 철거 배재 요청 등 은천교회 측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일반 지적물 치고 감정평가가 잘 내려진 상태"라고 했다.
서구청이 현재 교회 측에 지급한 보상금은 4억 5천만 원이다. 보존을 요구한 교회 측 주장을 반영해 당초 도로공사 부지로 예정됐던 교회 부지 180평 전체에서 일부 축소된 60평만 수용하기로 했다는 게 서구청 측 설명이다.
하지만 교회 측은 "보상금액을 늘려달라"며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한 상태다. 은천교회 담임 박현규 목사는 "교회 옆 인근 부지에 30여 명의 성도들이 철거한 뒤 남은 잔해로 교회를 직접 복원할 예정"이라며 "보상금을 받아도 최소 4억여 원의 복원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 전문가들도 은천교회 건물에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건축학과 우신구 교수는 "부산에서 1950년대 지어진 석조건물은 현재 3~4개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부산이 피난 수도를 주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선정되려고 노력하는데, 부산 은천교회가 이에 대한 좋은 증거 유산일 수도 있었다. 현재 철거가 진행돼 많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은천교회는 건축물 등기가 안 된 상태라서 문화재 등록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방법을 찾는 와중에 철거가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박현규 목사는 부산시와 서구청을 수 차례 방문해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구청의 철거 계획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은천교회는 6.25 사변의 기억 차제를 품은 건축물"이라며 "6.25 전쟁 직후 기감 교단이 파견한 교사들이 형편이 어려운 부산 피난민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학교 같은 역할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6.25 전쟁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은천교회는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다. 대한민국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인 6.25 전쟁을 극복한 피난민들의 기억을 담은 상징물"이라며 "그런데도 부산시는 어떻게든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려고 한다. 은천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교회 이전이나 복원에 관해 속히 도와야 한다"고 했다.
현재 은천교회 성도들은 천막을 치고 은천교회 내부 집기류들을 옮기고 있다. 교회 철거를 며칠 앞두고 한 성도는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인 밴드(BAND)의 교회 게시판에 시편 56편 8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적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물 병이 있었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