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중세의 성경 사본은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린디스판 복음서(Lindisfarne Gospels)와 트리니티대학이 소장한 더로복음서(The Book of Durrow)와 켈스복음서(The Book of Kells)이다.
이 3종의 중세성서는 난해한 기하학적 문양과 독특한 서체를 보여주는 앵글로색슨예술(Anglo-Saxon art)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켈스복음서는 스코틀랜드의 서쪽 해안 아이오나(Iona)에 있는 성 콜롬바수도원에서 8세기 말에 제작이 시작된 듯하다. 그러나 806년에 바이킹들의 침략을 받게되자 아일랜드 미스(Meath)에 있는 켈스수도원으로 옮겨가 그 곳에서 9세기 초에 완성된 듯하다.
이 사본은 신약성서의 사복음서 요약본으로 대부분 벌게이트(Bulgate) 성서를 발췌 기록 하였다. 벌게이트 성서는 4세기에 교부 제롬(Jerome)에 의해서 번역된 라틴어성경으로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용된 공인성경이었다
이 사본에는 10매의 전면도판에 그린 장식삽화(miniature, 미니어처)가 유명하다. 그것은 사복음서 기자 초상 2매, 기자상징 3매, 카펫페이지 1매, 그리고 마돈나와 아기예수, 그리스도의 체포, 시험받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관 등이다.
'마돈나와 아기예수(Madonna and Child)' 삽화를 살펴보자.
성모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이 도상은 서양 필사본 중에서 성모자를 사본이나 그림으로 그린 첫 번째 원형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삽화(미니어처)이다.
성서화에서 아기예수의 도상은 성모 마리아의 지위격상의 결과 나타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성모에게 '신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 란 뜻에서 ' 테오토코스(Thetokos)'라는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때부터 성모의 격에 맞는 아기예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3세기까지 신성하고 장엄한 마리아를 성서화에서 볼 수 있다.
마돈나라는 호칭도 원래는 '나의 귀부인' 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의 호칭으로 성모의 이콘(icon,像)이나 조상 그리고 성화를 지칭 할 때 많이 사용된다. 마치 중세에 많은 성당들이 마리아에게 바쳐졌다는 의미에서 '노트르담'으로 부르거나 옥좌에 앉은 마리아를 그린 대형 제단화를 '마에스타(Maesta)'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켈스복음서의 성모자 삽화는 초기의 도상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모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정면 얼굴로 전체적으로 7 분신(몸 전체 크기의 4분의 3) 초상화로 그렸다.
아기예수는 얼굴모습이 14세기이후의 천진난만한 아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크기만 작게 그렸을 뿐 지혜로운 어른의 형상으로 왕자처럼 고귀한 자태이다. 이런 도상은 비잔틴과 곱트교회 이콘에서 전래된 듯하다.
성모자 주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 넷이 호위하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이 천사는 마태복음의 기자인 마태를 나타내는 심벌이므로 이 삽화는 마태복음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사복음서 기자의 상징은 에스겔서와 묵시록에 나오는 하늘보좌 주위의 네 생물인데 2세기의 성 이레네우스와 4세기의 성 제롬이 사복음서의 성격과 관련하여 해석하였다. 마태의 상징은 사람(천사), 마가는 사자, 누가는 송아지, 그리고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가 되어 성서화에 그리게 되었다.
성모 옥좌 옆에 6인의 옆얼굴을 그린 패널판이 보이는데 이 인물이 누구인지 논란이 있었으나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선조로 보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삽화의 테두리 속에는 매듭무늬와 나선형무늬 등 추상적인 장식무늬로 가득 차 있다. 이 삽화를 그린 수도사들은 흑색, 적색, 보라, 황색, 초록 그리고 라이락과 핑크빛의 밝은 잉크로 그림과 글씨를 채식(채색 illuminate)하였다.
또한 토착 앵글로색슨족의 금속세공에 전통적으로 써왔던 동물 형태와 추상적 장식무늬에다가 켈트족의 소용돌이 무늬, 나선형 무늬 등 기하학적 무늬와 결합하여 앵글로색슨 예술로 승화시켜 놓았다.
이 삽화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은 말, 생쥐와 고양이, 산토끼, 수사슴은 물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그리핀(griffin)도 등장하여 아름답고 난해한 성서화를 보여준다.
340 페이지의 양피지에 그린 이 사본의 서체는 크고 아름다운 두문자가 있는 인슐라체(Insular Script)이다.
마돈나와 아기예수 다음 페이지에는 인슐라체의 마태복음 본문이 있다. 그 첫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무늬인 유명한 '카이로 모노그램(Chi Rho monogram)'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글자인 카이(X), 로(P), 이오타(I)를 써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성경 본문은 라틴어 이지만 ' 예수 그리스도' 만은 관행 대로 그리스어로 썼다. 그 큰 글자 밑에는 'h,generatio' 즉 '태어나다'란 라틴어 글자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 태어나시다' 이다. 복음서 기록 목적인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이 기쁜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까 기도하던 수도원 필사실의 수도사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