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묵상하는 교회공동체의 구제사역

목회·신학
목회
이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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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 18일 설교에서 “세상의 박애주의 정신과 달라”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영상 캡처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이다. 마태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시고 빈 들로 가셨다. 예수께서 빈들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많은 수의 무리가 모였는데, 성인 남성만 계수하였을 때 오천명이었다. 이 곳에서 이 무리 가운데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해석은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특히 어린 아이가 내어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도시락, 즉 작은이의 작은 내어놓음이 이 큰 기적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해석은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이 도시락을 예수께 가져오면서 제자가 한 말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인데, 여기에 대하여 18일 송태근 목사가 다른 각도의 해석을 제시했다. 제자의 이 말은 작은 도시락의 내어놓음에 대한 기쁨에 찬 보고가 아니라 "사실상 이 상황이 얼마나 해결하기에 절대 불가능한 상황인가를 문예적으로 설명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빈 들이라는 공간, 어둠이 내리는 시각, 그리고 주려 있음이라는 상황에서 "오병이어"는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한계 상황을 직시하자는 촉구였을 수 있다. '선생님, 지금 성인 남자만 오천명인데 우리가 가진 것이 겨우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 아까 말한대로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마을로 가게 하여 먹을 것을 사먹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다'라는 것이다. 여튼 이 같은 상황 가운데서 작은 오병이어 도시락이 보고되었고,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신다.

송태근 목사는 예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6절)는 말과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18절)는 말은 이율배반적인 말이지만, 여기에 우리의 신앙 현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질서가 있음을 강조했다. 우리의 드림은 다른 어떤 곳이나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닌 '주 예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 목사 이 케이스를 현실 신앙 생활에서 다음의 예시로 적용했다. 한 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물질을 드리고자 하는데, 그 물질을 목사나 교역자 개인에게 주지 말고 반드시 교회라는 공적 기관에 주라는 것이다. 이유는 목회자는 물론 헌금하는 사람 모두 나약한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율법적이 되고 시험에 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인간임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송 목사는 이 맥락을 교회동체와 구제의 문제로 확장시켜서도 적용을 시도했다. 오늘날 교회가 구제사역을 할 때 "구제의 주체는 개인이 되어서는 안되"고 "예수님이 주체가 되시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 도시락을 받으시고 그것에 축사하시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제자들이 무리에 나누어주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의 구제사역도 주 예수가 주체가 되시게 하고, 개인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필요가 있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것이다.

여기서 구제는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돕는 것인데, 송 목사는 교회공동체의 구제사역은 "세상의 박애주의적 차원의 도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기독교의 구제는 단순한 물질적 나눔을 넘어 "구원에로의 초대이며 복음 선포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가진 것'을 '너'에게 '준다'라는 것이 아닌, 나에게 허락된 것을 주께 드리고 그것이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필요한 곳에 나누어질 때, 그것은 단순히 '내'것이 '너'에게 소유가 이동된 것임이 아닌, '주님의 축사를 받은' 것이 '이웃에게 나누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곧 내가 가진 구원에의 기쁨이 이웃과도 나누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구제사역은 물질적 차원을 넘어 좋은 소식을 함께 나눔임이 이로써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