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 회의실에서 본부 이사장 박진탁 목사의 유산기부 약정식이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본부는 하나은행과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유산기부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후 5개월 만인 이날 첫 번째 유산기부 약정 참여자로 박 목사가 나선 것이다.
본부는 “박진탁 목사는 1991년 국내에서 최초로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1991년 1월 24일, 한양대병원에서 신장 하나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 신장은 오랜 기간 신장병으로 투병하던 한 환자의 몸에 이식되어 그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주었다”며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된 타인 간 순수 신장기증 수술이었다. 1997년에는 아내 홍상희 사모(80세, 여)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기증하며 부부 신장기증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968명의 사람들이 박 목사를 뒤따라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신장병 환자들의 지원하는 제도도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1999년 본인부담금이 없는 사랑의 인공신장실을 개원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생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신장병 환자들에게 희소식을 안겨주었다”며 “이후 꾸준한 노력으로 의료보험 적용이 확대되는 등 혈액투석 치료에 대한 사회적 지원 발판이 마련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제주 서귀포시에 라파의 집을 개원하며 혈액투석 치료로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신장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했다.
본부에 따르면, 2013년에는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을 위한 자조모임 ‘도너패밀리’를 결성하며 다양한 예우 사업을 펼쳐가기도 했다. 박 목사는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군 복무 중 쓰러져 장기기증을 한 양희찬 상병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안겼다“며 “이후 2008년 권투 챔피언이었던 최요삼 선수의 장기기증이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故 양희찬 상병과 故 최요삼 선수의 어머니를 만나며 기증자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2013년 지역별 소모임을 통해 기증자 유가족들이 서로를 만나 위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심리 치유 프로그램, 기증자 초상화 전시회, 장기기증 내용을 담은 연극 공연 등을 추진하며 뇌사 장기기증자의 사랑을 기리고 기증자 가족들을 격려해왔다.
“나눌 것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장기기증 및 시신기증, 유산기부로 모든 것을 나누고 떠나고 싶습니다.”
8일, 진행된 유산기부 약정식에는 아내 홍상희 사모와 오랜 친구인 김해철 목사가 함께 자리했다. 김 목사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생명나눔 하나만을 바라보고 산 친구”라고 박 목사를 소개하며 “유산기부까지 약속하며 장기기증의 활성화를 염원하는 것은 박 목사에게는 사명과 같은 일일 것”이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지난 30년 간 장기기증 운동을 이끌어왔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우리 부부는 본부에 장기기증 희망등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시신기증 신청을 해놓았다. 마지막 순간 장기나 시신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재산의 일부도 나누고자 한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아내 홍 사모 역시 “신혼 초 지속적으로 헌혈을 하고, 이후에는 신장 하나를 기증하며 남편과 저에게 나눔은 일상이 된 것 같다”며 “유산 기부를 약속하는 지금 이 순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기쁘다”는 감회를 전했다.
한편, 하버드 의과대학 종신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박 이사장의 아들인 박정수 씨는 지난 2020년 D.F장학회(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회)가 시작될 수 있는 시드머니 1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처럼 가족들이 같은 마음으로 장기기증 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가운데 박 목사는 “장기기증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고귀한 유산을 남긴 기증인들의 사랑을 기리며 그분들이 존경받고, 칭찬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유산이 사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박진탁 이사장의 유산기부 약정을 통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본부의 유산기부 프로그램은 ‘리본레거시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유산기부 후원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Reborn)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