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의 신앙고백, 설립 초기부터 성경에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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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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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규 교수, 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회서 발제

한국장로교신학회가 20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WEA(세계복음주의연맹)’라는 주제로 제36회 온라인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박응규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가 ‘WEA의 설립배경과 과정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복음주의 신학·신앙운동의 중심에 WEA”

박응규 교수 ©박응규 교수 제공

박 교수는 “예수님의 지상사역 이후의 교회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볼 수 있다. 교회를 향한 도전에 대해서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은 크게 세 가지 변곡점을 형성했다”며 “첫째, 교부들은 초대교회 이단들로부터 정통신앙을 수호했고,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통해 진리를 확증했다. 둘째, 종교개혁자들은 중세로마교회의 타락과 부패로부터 성경적 가르침을 기초한 종교개혁을 실천했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인간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로 이끈 자유주의에 저항하며, 복음주의 신학·신앙운동을 전개했다”고 했다.

이어 “19세기 신앙 좌표를 잃은 교회를 바로 인도하고자 했던 복음주의 신학·신앙운동의 중심에는 WEA가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WEA는 1846년 런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We are One Body in Christ, Unum Corpus Sumus in Christo)라는 주제로 모인 약 800~1000명의 복음주의자들로 결성된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 EA)의 역사성을 계승한다”고 했다.

그는 “WEA 설립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은 19세기 중엽의 산업혁명, 이에 따른 도시빈민층 발생, 노동력 착취, 도덕성 상실 등 많은 사회 문제들과 사회적 불의들의 증가와 이에 대응한 사회적 신앙운동이 그 역사적 배경이 됐다”며 “또한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한 유럽 내의 급격한 사회변화와 세계관 변화에 대한 신앙적 대응의 성격도 지녔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복음주의연맹은 첫 런던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국제대회를 개최하여 복음주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 정체성에 따른 사회적 참여 운동과 교회의 일치운동을 전개해 나갔다”며 “각 대회는 복음에 입각한 교회의 일치와 사역에 있어서 연합을 강조했으며,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로마 가톨릭의 정치적 억압과 독재에 맞서 신앙의 자유를 천명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고찰해 보면, ‘복음주의연맹은 당시 형식화된 국교회와 자유주의적인 신학이 지배적인 영국의 영적 상황과 제국주의에 따른 식민지배의 확장, 공산주의의 등장 등 당시 유럽의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결성되어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연맹은 무엇보다도 복음에 기초한 바른 신앙을 확립하려 했다’(김요섭,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역사와 활동’ 87)”고 했다.

박 교수는 “복음주의연맹은 성경이 신적인 계시로서 그 권위와 충족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이 교회의 정체성과 일치를 이루는 데 있어서 핵심적임을 최우선적으로 선언했다”며 “또한 모든 개인 성도들이 성경을 해석할 의무와 권리를 강조함으로써 형식화된 국교회나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신학과 구별하여 바른 권위와 교회체제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했다.

또한 “삼위일체 교리와 인간의 전적타락,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 성령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심판으로 인한 의인의 영원한 복과 악인의 영원한 벌, 그리고 목회와 성례의 신적인 제정을 강조함으로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역들이 인간적인 활동이 아닌 복음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방식과 목적대로 시행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1946년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복음주의자들을 회집하였고, 미국복음주의협의회(NAE)의 의장인 해롤드 오켕카(Harold J. Ockenga)를 강사로 세웠다. 당시 전(全)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양대 축인 영국연맹과 NAE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공동의 지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제적인 복음주의자들의 연대(連帶)였다. 이제 막 태동된 NAE에서는 유럽에 새로운 범(凡) 복음주의 기구 설립 계획이 있었고, 영국연맹에서는 EA가 계획했던 복음주의자들의 연대 사명을 조속히 추진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 가운데 1948~1951년에는 양측의 연대가 촉진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48년 에큐메니칼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의 설립과 무관하지 않다”며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WCC와의 참여, 교류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복음주의 연대가 절박했다”고 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1950년 3월, 영국 복음주의자 톰 리즈(Tom Rees)에 의해 영국 켄트(Kent)에서 유럽 12개 국의 복음주의자들과 NAE의 대의원들이 모여 크게 2가지 결정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1846년 EA의 근본 신조(basis of belief)를 주춧돌로 삼는 것에 동의한 것이었다.

박 교수는 “이 모임은 다음 단계로 발전하여 동년 9월 보스턴 소재 고든신학교(Gorden Divinity School)에 모여 국제적 복음주의연맹 구성에 착수했다”며 “이러한 결정은 양대 복음주의자들 모두에게 고무적인 결정이었으며, 1951년 1월 네덜란드 본드쇼텐(Woundschoten)에서 모여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라는 새로운 기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WCC는 외형적 조직 통합에만 역점을 두었을 뿐, 참여 교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기본 신앙조항’의 부재는 그들의 태생적 문제점이었다”며 “이에 복음주의자들은 우선적으로 신앙적 일치에 기초하였고, 각 정회원 그룹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적용할 수 있는 근본적 신앙조항을 마련하였다. 이는 WCC에 비견될 만한 복음주의자들의 협의체가 되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명실공히 국제적 복음주의 연대 기구가 된 WEF는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의 전임(專任) 사무총장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며 “그들은 세계 전역에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전도(evangelism), 선교(missionary), 문서사역(literature), 봉사(Christian action)에 힘썼고, 1951~1982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후 200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총회에서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 WEA)으로 이름이 변경됐다고 한다.

“WEA의 7개조 신앙고백… 복음주의에 부합”

 

지난 2019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WEA 총회 당시 참석자들의 기념촬영 모습 ©WEA

이후 WEA의 신학적 정체성을 고찰한 박 교수는 우선 개명 전 WEF 때까지의 신학에 대해 “그들은 신앙고백에 대해서 가장 우선순위를 둔다. 이 신앙고백은 근본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여기에 그들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있다. 그들은 이 신앙고백 내에서 협력한다고 규정한다”며 “둘째, 그들에게는 성경만이 유일한 규준(規準)이 된다. 근본교리 외에 교리적 다양성이 인정되고, 다양한 교회 정치도 포용된다. 다만 성경의 명령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셋째, 그들은 중앙집권적 교회 통합을 거부한다. 이것(중앙집권적 교회 통합)은 WCC의 방향이기도 하고, 중세 로마교회의 양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복음전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면 2000년대로 오면서 여전히 그들은 복음주의 정체성을 잘 고수하고 있는가? WEF는 2001년 5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제11차 총회를 갖고, 새로운 이름인 WEA로 변경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들의 신앙적 근거가 EA에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며 “총회 후, 그들은 WEA 7개조 신앙고백서를 최종 수정(2001년 6월 27일)하여 공포했다. 수정안은 현재까지 계속 고백되어지고 있다”고 했다. 해당 수정안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믿습니다.

1. 원래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거룩한 성경은 신적 영감을 받아 오류가 없으며,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며,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집니다.

2.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셨으나 죄는 없으신 인간의 삶을 사셨고, 신성한 기적을 행하시고, 대속(代贖)적으로 죽으셨으나 육체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권능과 영광 중에 인격적 재림을 하실 것입니다.

4.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성령으로 거듭남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상실되고 죄된 인간은 구원받습니다.

5.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며 일을 합니다.

6.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모든 참된 신자들의 영이 하나됩니다.

7. 구원받은 자와 멸망 받을 자 모두가 부활합니다. 이들은 영생의 부활로 구원받으며, 저들은 저주의 부활로 멸망받습니다.

박 교수는 “WEA의 수정된 7개조 신앙고백서(2001)는 EA 신앙고백(1846)보다는 NAE 신앙고백(1943)과 유사하다. 배열에 있어서는 다소간 상이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며 ”결론적으로 WEA의 신앙고백은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성경에 기초하고 있고, 복음주의에 부합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WEA가 시대적 도전들 앞에서 기독교의 영향력 상실이라는 과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복음주의 신앙을 고백하는 연대를 추구하고 사역을 전개해 나간 것은 분명히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교파들과 기관들이 힘을 모아 공동보조를 이루기 위하여 WEA가 ‘교리적 동맹이 아닌 사역적 동맹단체’로서 측면을 강조한다면, 기대와 희망보다는 갈등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WEA를 비롯한 복음주의자들은 신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사역의 연대를 공고히 하려면, 개혁신학을 그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선 박 교수 외에 우병훈 교수(고신대)가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 교부시대부터 종교개혁기까지 중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권경철 교수(총신대)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의 문맥에서’, 이승구 교수(합신대)가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에 대한 정통파 개혁신학의 견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했다. 또 김윤태 교수(백석대)와 이남규 교수(합신대), 박태수 교수(한국성서대), 박명수 박사(전 서울신대 교수)가 논평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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