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막 고개를 내밀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엄마의 품 안에 안겨 있다가 집에 다다르자 땅에 발을 내딛은 예준이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알고 보니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치킨 배달을 하던 오토바이가 우리 뒤에 멈춰 선 것이다. 넉살 좋은 예준이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배달원 아저씨에게 먼저 미소로 인사했다. 저녁 시간대라 밀려드는 배달 전화에 몹시 피곤한지 축 처져 있던 배달원 아저씨는 아이의 미소가 힘이 되었는지 헬멧 사이로 눈웃음을 보이며 화답했다. 수줍음이 많은 엄마는 배달원 아저씨에게 말을 거느라 바쁜 예준이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예준아, 이리 와. 이리 와."
배달원 아저씨와 예준이의 대화는 짧았지만, 뭔지 모를 훈훈함이 느껴졌다. '빨리빨리'의 압박에 마음 쫓기듯 일하시는 그분에게 이 아이를 통해서 잠시의 쉼이 전해졌다면 나야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상대방이 마스크를 내리지 않으면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아서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너무나 많은 필자는 타인을 접하는 일이 더욱 버거워졌다. 그래서 혹여나 내 아이 때문에 타인이 불쾌감을 느끼진 않을까 늘 마음을 졸인다. 그런데 이 아이는 넉살이 좋아서인지 누구든 반기며 대화하는 걸 즐긴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새한테도 인사를 하고, 동네 아주머니에게도 싹싹하게 인사해서 얼떨결에 요구르트를 횡재한 기쁨도 누리는 아이다.
코로나로 모두가 지치고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도 가장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고 갇혀만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제 백신 접종도 시작된 만큼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닌 소통의 거리를 좁히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시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