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형 성범죄, 일그러진 ‘팬덤정치’가 낳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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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여성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시인하고 25일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정의당은 김 대표를 직위 해제하고 당 징계위에 제소하기로 했다. 소수, 약자의 인권을 대변해 온 진보 진영의 잇따른 성추문에 온 사회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정당 대표의 여성 의원 성추행은 정당사에 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성폭력 근절을 강조해 온 진보 정당의 대표였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정의당의 정강정책에서 인권과 양성평등이 맨 앞줄에 있다. 그런 연유로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동성애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역차별법’이라는 교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당 소속의 광역단체장을 비롯, 거물급 여권 정치인들의 성추문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대중에 소수와 약자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대변해 온 이미지로 각인돼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지지를 받았으나 위선의 가면이 벗겨지자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의 추한 몰골을 보여줬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 여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온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 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시인한 뒤 시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1대 총선에 여당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총선 뒤에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비판과 함께 강제 추행한 또 다른 여성 피해자가 나타나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지난 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자기 실종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여당의 차기 대선 유력 주자 중 한 사람이던 박 전 시장 또한 자신의 여비서를 수차례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여당은 지도부와 여성 의원들까지 나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2차 가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관련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남인순 의원은 이 문제를 직권 조사해 온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박 전 시장의 말과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결과를 발표하자 6개월 만에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다. 그러나 여성운동 대모로 불리는 그가 여성인권은 외면한 채 정의당 김종철 대표 사건이 터지자 거기에 묻어가려는 ‘뒷북 사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마당에 민주당이 25일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는 논평을 내자 ‘내로남불’ ‘후안무치’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야권과 국민들까지 민주당이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광역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사문화 시키고 후보를 낸 것이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는 반응이다. 오죽하면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이 페이스북에 “민주당도 같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충격과 경악이라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쓴소리를 냈을까.

이번 사건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 소수,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구조적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온 진보정당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뿌리 깊은 원인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화 세대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자신들의 투쟁 대상으로 삼았던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학생·시민운동은 주로 민주화를 위한 반독재 투쟁운동이었다. 그 시절에 습득한 이념적 조직문화가 몸에 밴 사람은 시대가 바뀌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정치인이 된 뒤에 추문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스스로 도덕적 죄책감에 빠지거나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성을 하나의 이념적 도구로 여기는 집단의식에 지배받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늘 ‘피해자’란 인식에 젖어왔다. 오랜 세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탄압 속에서 불의와 투쟁해 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기득권을 쥔 입장이 되자 반대세력을 이념투쟁의 상대로 규정하거나 자신들의 욕망조차 숭고한 민주화 투쟁으로 포장하려 한다. 이런 보상심리가 ‘내편은 선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이라는 전제하에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행위를 얼마든지 가능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성폭행 피해자를 향해 ‘꽃뱀’이라 한 현직 여검사와 ‘피해 호소인’이라 지칭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은 여당 지도부와 소속 여성의원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여성가족부와 서울시까지 모두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집단적 최면이 일부 정치인들로 하여금 성폭력을 저질러도 자신은 결백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그 어떤 이유와 상황논리를 가져다 붙여도 범죄다. 그것도 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송두리째 짓밟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극악한 범죄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는 ‘팬덤 정치’라는 괴물을 물리치지 않는 한 이 같은 권력형 성범죄는 언제든 독버섯처럼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