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또는 입양 아동을 바꾸는 방식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한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다”며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화해 나가면서 입양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입양이 아이를 골라 쇼핑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항의성 청원이 등장했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양부모님께 사과하셔야 한다’는 또 다른 제목의 청원도 이어졌다. 야당은 “아기가 무슨 반품 교환 환불을 마음대로로 할 수 있는 물건이냐”며 대통령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회견 직후에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하에 관례적으로 활용하는 ‘사전위탁보호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도 “양부모의 동의 아래 관례적으로만 활용했는데 이제 입양 특례법 개정을 통해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며 거들고 나섰다.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 대변인은 재차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아동을 대상으로 ‘반품’이라느니 너무 심한 표현이 나왔다”며 야당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의도나 머릿속에 ‘아동반품’이란 의식 자체가 없다. 어떻게 (야당이) 그런 발상이 가능했는지 오히려 궁금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시청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이 말꼬투리를 잡아 본말을 호도하고 있다는 식이다. 해명이 변명으로 들리고 대통령의 입장을 더 난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의 입양에 대한 견해가 왜 이토록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는지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
입양아가 맘에 안 들면 바꿀 수 있다고 한 말이 실수였다 하더라도 정작 국민들이 놀라고 실망한 것은 문 대통령이 아동 학대 사건에 입양 제도를 언급한 그 자체이다. 16개월 영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졌는데 입양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못해 ‘유체이탈’ 화법이란 소리까지 나올만하다. 또 수많은 입양가정에는 2차 가해로 받아들여질 소지도 있다.
청와대는 뒤늦게 ‘사전위탁보호제’로 이 사태를 덮으려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전위탁보호제’야말로 입양제도 자체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비판도 있다. 20대 국회이던 2017년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이 사전위탁보호제 내용을 담은 ‘입양특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가 자동 폐기된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이 법안이 “소위 아동 쇼핑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입양가족연대가 19일 오후 국회 앞에서 발표한 호소문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있다. 그들은 “대통령의 회견내용이 오해라며 그 오해를 불식하자고 내놓은 입장문에 예비입양가족이 받을 상처는 더 깊고 아프다”며 “예비입양부모에게 아이는 이미 ‘내 새끼’”라고 했다.
대통령의 입양 관련 발언의 파장이 엉뚱하게 월성원전 감사문제로 여권과 대립각에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소환하기도 했다. 주요 언론들은 최 원장이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게 아니다”라고 했던, 과거 판사시절에 두 아들 입양과 관련해 모 신문과 인터뷰 했던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대통령의 말과 최 원장의 말을 비교한 언론의 의도성이 감지된다.
이번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준비한 측은 사전에 짜인 각본이 없다고 밝혔다.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 소통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잘 짜여진 ‘이벤트’였다는 점만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말았다.
이날 회견에서 문제가 된 대통령의 발언은 비단 입양문제만은 아니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등 국민들이 들을 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추가질문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즉 이번 회견에서 추가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이날 회견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이 ‘주인공’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그 주인공인 대통령을 위한 이벤트에 흠집이 생길까봐 지나치게 완벽한 의전 욕심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것밖에 설명이 안 된다. 예상 질문을 놓고 리허설을 4회나 반복하고도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쇼’ 기획자는 2시간이나 TV 앞에 모이게 한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누구도 대통령이 무흠 무오하다고 믿지 않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기자회견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대통령의 이력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도 아니다. 입양을 마치 쇼핑하듯 말한 것은 분명 실수였다고,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매번 야당 탓, 듣는 사람 귀 탓을 하며 ‘갈라치기’를 시도할수록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만 벽처럼 쌓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