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서구학자들은 기독교 후기 시대를 평가하기를 사회 중심에 있던 교회가 주변으로 밀려난다”며 “기독교인들이 사회의 주류층이었지만 점차 축소가 되며, 사회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낯선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혜택을 누리던 교회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소수 그룹으로 취급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독교 후기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며 “서구학자들은 대안으로 먼저 사회 전반을 통제하기 보다는 복음의 증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며, 둘째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인 선교적 삶을 통해 선교해야 하고, 마지막 셋째 제도적 기관으로서의 교회도 중요하지만 강력한 생명운동과 구원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본문)창세기 14장을 보면 여러 질문이 생긴다”며 “먼저 왕이 10명이 등장하는데 ‘왕’이라는 단어가 27번 등장한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왕이 아니지만 소돔왕과 살렘왕이 아브라함을 왕의 골짜기에서 영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오늘날 왕의 골짜기는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둘째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축복을 하자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십일조를 드린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인가”라며 “셋째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를 거느리고 네 왕의 연합세력을 격퇴하고, 소돔사람과 롯을 되찾았는데 소돔왕의 말에도 왜 전리품을 취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김 교수는 “먼저 두 왕이 아브라함을 왕의 골짜기에서 영접한 이유는 아브라함은 왕이 아니었지만 실제 왕보다 더 위대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같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왕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주눅들고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어 “오늘날에도 왕들은 존재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말)과 빚투(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가 사람의 욕망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환경을 조성한 왕들의 잘못된 정치가 한 몫 한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 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며 “비록 나그네였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소돔 사람들을 구해내고 그들의 재산을 회복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상유지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웃을 구원하는 생명운동에 목숨을 건 것”이라며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전쟁의 승리한 왕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단지 영적인 진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후기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복지와 번영만이 아니라 이웃의 복지와 세상의 번영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둘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멜기세댁에게 준 것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증인으로 드러낸 것이며, 전리품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여호와가 진정한 승리자이자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물질과 기도, 헌금과 찬양으로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셋째 소돔왕의 말에도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취하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재물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라며 “소돔왕은 뱀의 후손으로서 재물을 줄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있는 동안 재물을 사용하고 분배하는 권한을 받은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왕의 골짜기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이웃의 재산을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전쟁을 경험하고 예배를 드리는 이곳 바로 교회”라며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든 시대, 우리는 왕의 골짜기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축복을 받으며, 우리에게 재물도 주시고, 끝내 별과 같이 많은 후손들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생명운동, 구원운동을 다함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