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을 해석하는 방식은 그 해석자가 예수와 기독교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는 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 수년간 산상수훈과 그 해석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산상수훈이 각 기독교 전통의 전반적인 신학적 신념과 이해에 관한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약의 첫 번째 가르침인 산상수훈을 해석하는 방식은 여러 신학적 주제들과 기독교인의 실천에 대한 이해를 드러낸다. 새 언약 속에서 율법의 역할, 사람들의 윤리 체계에서 미덕(있는 경우)이 차지하는 역할, 기독교인의 삶에서의 경건한 행위의 중요성, 믿음과 행위의 관계, 종말론적 성향 혹은 그것의 부족, 기독교인의 삶에서 고통의 역할,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 등 포괄적 범주의 주제에 대한 견해가 산상수훈의 해석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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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나의 소리가 들리게 되고 그것이 또 하나님의 소리처럼 위장해서 들리게도 됩니다. 《하용조 목사의 큐티하면 행복해집니다》, 하용조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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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역사는 언제나 자기 대면입니다. 나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죄의 실존과 만나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와 함께 걷는 천로역정》, 이동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P. 227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예수의 위대한 꿈과 이상, 이 넓은 아량과 관용은 십자가에 기꺼이 못 박혀 죽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모티브이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_ 일곱 번째 계단 ‘아량과 관용’ 중에서
P. 260 어떤 경우엔 너무나 처절하게 망가져서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라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엔 다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끝난 것은 더더욱 아무것도 없습니다.
_ 마지막 계단 ‘완전한 인도’ 중에서